170만년 전 인류 조상 뜨거운 온천물로 날고기 익혀 먹었을까

'인류 요람' 올두바이협곡 인근서 온천 확인…온천 이용설 제기
인류의 초기 조상이 불을 활용해 음식을 요리하기 훨씬 전에 뜨거운 온천물로 날고기나 뿌리 식물을 익혀 먹었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스페인 알칼라대학 등의 국제연구팀은 탄자니아 북부 선사시대 유적지인 '올두바이 협곡' 주변에 온천이 존재한 증거를 발견하고 인류의 조상이 이 온천을 음식물 요리에 이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인류의 요람'으로 알려진 올두바이 협곡에서는 약 180만년 전 화석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의 화석이 발견됐으며, 많은 동물 화석과 석기가 나와 인류 초기 조상의 주거지로 추정돼 왔다.

MIT에 따르면 이번 연구 결과는 논문 제1저자인 지구·대기·행성과학과 연구원 아이나라 시스티아가 박사가 지난 2016년 올두바이 협곡 유적지에 3㎞ 걸쳐 펼쳐진 170만년 전 퇴적층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바로 아래 180만년 전 검은 점토층과는 확연히 다른 모래로 된 층을 발견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시스티아가 박사는 원래 동아프리카지역의 기후 변화가 주변 환경을 바꾸고 인류의 조상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려는 목적을 갖고 170만년 전 퇴적층을 조사했다.

당시는 비가 자주 내리고 나무가 자라던 습한 기후에서 건조한 초지로 바뀌던 때였다.

그는 이 퇴적층에서 채취한 사암을 연구실로 가져와 지질(脂質) 흔적을 분석했다. 이 지질에 식물 잎의 왁스 잔여물이 남아있으며 탄소 수나 동위원소 등을 분석해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시스티아가 박사가 사암 샘플에서 찾아낸 지질은 식물에서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시스티아가 박사는 같은학과의 로저 서몬스 교수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 지질이 약 20년 전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뜨거운 온천에서 서몬스 교수가 찾아내 학계에 보고한 박테리아들이 만들어내는 지질과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박테리아군 중 '서모크리니스 루버'(Thermocrinis ruber)는 초호열성(超好熱性) 미생물로 온천의 끓는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만 살 수 있다.

서몬스 교수는 "이 박테리아는 온도가 80도 이상이 아니면 성장을 멈출 정도"라면서 "시스티아가 박사가 올두바이 협곡에서 가져온 샘플 중 일부는 고온의 물이 존재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박테리아 지질과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연구팀은 올두바이 협곡 지역이 지질학적으로 활발한 활동이 있었던 곳으로 지하수가 지표면에서 끓어오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퇴적층 샘플을 채취한 곳이 동물화석과 석기 등이 발견됐던 곳 주변으로 인류의 조상이 고기나 질긴 뿌리 식물 등 음식을 온천의 뜨거운 물로 익혀 먹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이 뜨거운 온천물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는 아직 규명해야 할 과제지만 갓 잡은 사냥감을 뜨거운 물에 빠뜨려 먹기 좋게 삶거나 감자 등의 뿌리 식물을 비슷한 방식으로 쪄 먹었을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됐다.

또 동물이 우연히 온천의 뜨거운 물에 빠져 죽었다면 이를 건져 먹었을 수도 있는데, 시스티아가 박사는 "영양이 온천물에 빠져 (먹기 좋게) 요리가 돼 있다면 누가 먹는 것을 마다하겠느냐?"고 했다.

현재로선 인류의 조상이 뜨거운 온천물을 요리하는 데 이용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할 방법이 없지만, 연구팀은 올두바이 협곡 내 다른 장소와 퇴적층은 물론 다른 선사 주거지 주변에도 뜨거운 온천이 존재했는지를 확인해 나갈 계획이다. 시스티아가 박사는 "다른 선사 주거지 주변에 온천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관한 증거는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이는 행동에 관한 것으로 약 200만년 전에 멸종한 화석 인류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적어도 다른 중요 유적지에서 온천 이용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