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히틀러에겐 일말의 양심도 없었나

양심이란 무엇인가

마틴 반 크레벨드 지음
김희상 옮김 / 니케북스
464쪽│2만5000원
히틀러는 “양심을 뜻하는 독일어 ‘게비센(Gewissen)’은 유대인이 지어낸 단어”라며 자신의 사명이 세계에서 양심을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역사학자인 마틴 반 크레벨드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는 “‘양심을 유대 민족이 지어냈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단언한다. 유대인은 율법을 두려워하고 신의 명령에 순종했을 뿐 구약성경에는 양심이라는 개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양심이란 무엇인가》는 크레벨드 교수가 수십 년 동안 치열하게 연구해온 양심의 일대기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양심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서술돼 왔는지를 두루 살폈다.저자에 따르면 양심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5세기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에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게 한 테베의 왕 크레온에게 “혈육을 기리는 것이 부적절한 행동은 아니다”고 선언했다. 목숨을 걸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 이 장면을 “양심이 탄생한 순간”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기독교에서 양심을 먼저 꺼낸 이는 사도 바울이었다. 바울은 참된 신앙을 나머지 모든 거짓과 구분해야 하는 나침반으로 ‘시네이데시스’(양심의 그리스어)를 제시했다. 기독교는 양심의 가책을 강조함으로써 권위에 순종하게 만들었다.

저자가 톺아가는 양심의 일대기는 방대하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쳐 균형을 이루게 된 종교와 세속 권력의 양심, 르네상스 시기 정치와 종교로부터 떨어져나온 양심이 ‘국가’와 ‘의무’에 집중하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나치스가 자행한 집단학살에서 명령한 자, 실행한 자에게 양심은 있었을까. 살육의 현장에서 양심은 의무감으로 포장돼 악행의 방어막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주제로 대두된 인권, 건강, 환경과 양심의 문제,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로봇과 사이보그에게 양심을 심어줄 수 있는지도 관심사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흔히 양심을 자신이 속한 종교의 율법과 혼동한다고 지적했다. 서로 다른 신념과 주의·주장이 충돌하며 소란스러운 지금, 양심의 근본문제를 성찰하기에 좋은 책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