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이 느는 게 큰일일까"…대출 규제 앞에 놓인 비상식 [박종서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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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용대출 규제의 구조와 논리를 취재하다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에게 측은함까지 느껴질 지경입니다.
저금리 시대에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코로나19로 시장에 돈을 풀어야 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손을 대야 하는 처지가 처량해 보여서라고 할까요. 금융상식에서 벗어나든 말든 무조건 신용대출 증가세를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압박감이 전해집니다. 신용대출 증가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기본 대응은 거액의 신용대출 억제입니다. 고신용 고소득자들이 한꺼번에 수억원씩 빌려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는 부실우려입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부실이 걱정되면 고신용자들보다는 저신용자 대출을 막아야죠. 돈 잘 벌고 빚 잘 갚는 사람을 대출시장에서 밀어내면 문제가 오히려 악화되지 않겠습니까. 고신용 고소득자의 대출은 어떻게 줄일까요. 금리인상과 한도축소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신용이 좋은 사람들이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금융당국 담당자들이 이러한 비상식적 상황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문제라고 하면 해결책을 내야하는 게 정부 조직의 생리이고 숙명이겠지요. 하다못해 시늉이라도 내야하죠.
그런데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게 큰 일일까요. 많은 기사들이 문제를 지적하는데 사실 저는 확신이 안 섭니다. 문제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문제를 알고서도 금리를 낮춰서 일단 경기 위축의 급한 불을 끄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야 하는 시간이니까요. 고신용 고소득자들이 빚을 내서 집에 쌓아만 두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든 소비를 하겠지요. 바다에서 물이 들어오면 배도 뜨고 쓰레기도 뜹니다. 배가 제대로 뜨는지(경기부양)보다 쓰레기(부작용)가 뜨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말입니다. 신용대출로 얻은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가지 않을까도 금융당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할 것입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바와 달리 거액 대출자들이 집을 사는데 신용대출을 쓴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처지도 못됩니다.
신용대출 증가세와 집값 오름세의 연결고리가 작다고 했다가 ‘신용대출로 집을 샀다는 A씨’의 사례가 기사화되면 난처해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증가세가 당연하다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용대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초반에 흘러나왔을 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출을 막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충된다”며 규제를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코로나 금융지원’을 위해 은행들이 연초 계획 이상으로 신용대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도 금융위였습니다.
어쨌든 금감원은 지난 14일 은행권 주요 임원들을 불러놓고 신용대출 축소 계획을 내도록 요구했고 25일이 제출 마감입니다. 고소득 고신용자들의 거액 대출은 이제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신용대출 증가세도 수그러들겠지요. 신용대출을 얻어서 카카오게임즈 같은 공모주 청약을 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제 저희의 관심은 신용대출 규제 이후 저소득층이 돈을 빌리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데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피해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 대출은 절대 건들지 못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목표한 숫자를 맞추기 위해 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신용 저소득층에게도 대출을 제한하거나 금리가 오를 수도 있구요. 아무리 금감원이라도 일선 지점에서 벌어지는 영업행태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저신용 저소득층이 카드론과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밀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지요. 물론 이들 대부분은 어차피 은행권 금융소비자는 아닙니다. 은행의 신용대출은 신용 1~3등급에 주로 이뤄집니다. 저는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의 효과가 제한적이서 신용대출이 계속 늘어나더라도 크게 비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놔둘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금융당국이 규제의 시늉을 내는 선에서 대책을 마무리하길 바란다면 무책임하거나 헛짚은 생각일까요.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
저금리 시대에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코로나19로 시장에 돈을 풀어야 하는 상황인데 여기에 손을 대야 하는 처지가 처량해 보여서라고 할까요. 금융상식에서 벗어나든 말든 무조건 신용대출 증가세를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압박감이 전해집니다. 신용대출 증가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기본 대응은 거액의 신용대출 억제입니다. 고신용 고소득자들이 한꺼번에 수억원씩 빌려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는 부실우려입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부실이 걱정되면 고신용자들보다는 저신용자 대출을 막아야죠. 돈 잘 벌고 빚 잘 갚는 사람을 대출시장에서 밀어내면 문제가 오히려 악화되지 않겠습니까. 고신용 고소득자의 대출은 어떻게 줄일까요. 금리인상과 한도축소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신용이 좋은 사람들이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금융당국 담당자들이 이러한 비상식적 상황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문제라고 하면 해결책을 내야하는 게 정부 조직의 생리이고 숙명이겠지요. 하다못해 시늉이라도 내야하죠.
그런데 신용대출이 늘어나는 게 큰 일일까요. 많은 기사들이 문제를 지적하는데 사실 저는 확신이 안 섭니다. 문제가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문제를 알고서도 금리를 낮춰서 일단 경기 위축의 급한 불을 끄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야 하는 시간이니까요. 고신용 고소득자들이 빚을 내서 집에 쌓아만 두고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든 소비를 하겠지요. 바다에서 물이 들어오면 배도 뜨고 쓰레기도 뜹니다. 배가 제대로 뜨는지(경기부양)보다 쓰레기(부작용)가 뜨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금융당국을 출입하는 기자로서 말입니다. 신용대출로 얻은 돈이 부동산 시장으로 가지 않을까도 금융당국의 신경을 날카롭게 할 것입니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바와 달리 거액 대출자들이 집을 사는데 신용대출을 쓴다고 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처지도 못됩니다.
신용대출 증가세와 집값 오름세의 연결고리가 작다고 했다가 ‘신용대출로 집을 샀다는 A씨’의 사례가 기사화되면 난처해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금융당국이 신용대출 증가세가 당연하다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용대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초반에 흘러나왔을 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출을 막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충된다”며 규제를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코로나 금융지원’을 위해 은행들이 연초 계획 이상으로 신용대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것도 금융위였습니다.
어쨌든 금감원은 지난 14일 은행권 주요 임원들을 불러놓고 신용대출 축소 계획을 내도록 요구했고 25일이 제출 마감입니다. 고소득 고신용자들의 거액 대출은 이제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신용대출 증가세도 수그러들겠지요. 신용대출을 얻어서 카카오게임즈 같은 공모주 청약을 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제 저희의 관심은 신용대출 규제 이후 저소득층이 돈을 빌리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데 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 피해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생활비 대출은 절대 건들지 못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은행들이 목표한 숫자를 맞추기 위해 선을 넘어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신용 저소득층에게도 대출을 제한하거나 금리가 오를 수도 있구요. 아무리 금감원이라도 일선 지점에서 벌어지는 영업행태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겁니다. 저신용 저소득층이 카드론과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밀려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지요. 물론 이들 대부분은 어차피 은행권 금융소비자는 아닙니다. 은행의 신용대출은 신용 1~3등급에 주로 이뤄집니다. 저는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규제의 효과가 제한적이서 신용대출이 계속 늘어나더라도 크게 비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놔둘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금융당국이 규제의 시늉을 내는 선에서 대책을 마무리하길 바란다면 무책임하거나 헛짚은 생각일까요.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