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요기요·G마켓에 가짜 리뷰 올려드립니다"…쉿! 8000원의 '은밀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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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교란시켜 소비자만 피해온라인 쇼핑을 할 때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다른 소비자의 사용후기(리뷰)가 건당 5000~8000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 규모가 135조원을 넘어선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질서가 ‘가짜 리뷰’로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작물을 판매하는 A사는 최근 마케팅대행사들로부터 수상한 제안을 받았다. 제품이 잘 팔리도록 ‘리뷰를 작업해주겠다’는 얘기였다. 리뷰 한 건 비용은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8000원 △옥션 지마켓 11번가 쿠팡 위메프 티몬 5000원 △네이버플레이스 5000원 등으로 세분화됐다. 대행사는 “리뷰 작업을 하면 브랜드 인지도와 구매율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A사 대표의 이메일엔 1주일 동안 6개 대행사에서 비슷한 내용의 제안서가 날아들었다. A사 관계자는 “돈으로 리뷰를 조작할 수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며 “‘다들 이렇게 하는데 우리만 몰랐나’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비대면 구매의 특성상 소비자는 다른 소비자의 리뷰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지난해 기준 135조264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2018년(113조3140억원)보다 19.4% 증가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더 커질 전망이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커지는 시장에서 꼼수로 한몫 챙기려는 ‘나쁜 참여자’가 늘고 있다”며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방치하면 그 피해는 소비자가 본다”고 했다
"네이버 후기, 1만원 주면 조작"…'135조 e커머스' 흔드는 가짜 리뷰
한경, 5개 마케팅 대행사 '컨설팅 제안서' 입수
식품업체에 근무하는 이진영 씨(37)는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할 때 ‘구매 후기(리뷰)’를 아예 보지 않는다. 마케팅 대행사가 돈을 받고 긍정적인 리뷰를 대거 양산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이왕이면 구매 횟수가 많고 불만 리뷰는 적은 제품을 고르던 습관도 버렸다. 이씨는 “더 이상 리뷰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소비자끼리 순수하게 ‘이런 부분은 좋다’ ‘불편한 점은 이거였다’고 제품을 검증해주던 시스템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건당 5000~8000원, 많게는 1만원에 거래되는 리뷰가 국내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흔들고 있다.영수증 인증 리뷰까지 조작
18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5개 마케팅 대행사의 제안서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표 온라인 쇼핑몰 리뷰를 보장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진행 방식과 가격은 조금씩 달랐지만 큰 틀에선 모두 ‘조작 마케팅’에 해당했다.마케팅 대행사 S는 “실제 방문을 인증하는 ‘리얼함’을 제공하기 위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리뷰 체험단을 운영해준다”고 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운영하는 쇼핑 플랫폼이다. 이곳에서 소비자인 것처럼 상품을 구매하고 리뷰를 올려주겠다는 얘기다. 건당 1만원짜리다. S사는 “네이버쇼핑에서 첫 페이지와 뒤쪽 페이지의 매출 차이는 10~300배까지 난다”며 “구매 이력과 좋은 리뷰 수를 높여 관련 키워드 검색 시 첫 페이지에 진입하는 걸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첫 페이지 진입 성공률이 95%라고도 귀띔했다.
네이버가 ‘실제 이용자’의 후기만 담기 위해 영수증을 인증해야만 리뷰를 쓸 수 있도록 한 ‘영수증 리뷰’까지 조작해주는 곳도 있다. 영수증 리뷰는 30건에 30만원, 50건 40만원, 100건 60만원에 거래된다. 예약부터 영수증 리뷰까지 써주는 일명 ‘리뷰 패키지’는 30명에 70만원, 50명에 90만원이다. 여기에 블로그 리뷰까지 더한 3종 패키지는 30명에 110만원, 50명에 140만원에 달했다. G사는 “제품 구매 시 소비자 리뷰를 확인하는 것은 요즘 소비자 10명 중 8명의 일상화된 습관”이라고 강조했다.옥션, G마켓, 11번가, 쿠팡 등의 리뷰를 건당 5000원에 제시한 R사는 ‘인스타그램 마케팅’도 제안했다. 인스타그램 키워드 검색 시 상위에 노출되도록 하거나 팔로어를 늘려주겠다는 제안이다. 20만원을 내면 한 달 안에 판매사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어 1000명을 늘려준다고 했다. 이 밖에 소비자들이 관심상품을 표시하는 ‘찜’ 횟수를 늘려주는 서비스도 있다.
파괴된 소비자 검증 영역
유통업계 및 소비자 사이에선 리뷰까지 조작 마케팅이 침투한 데 대해 ‘최소한의 선을 넘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구매자 관점에선 광고보다 소비자 리뷰가 판매에 더 큰 영향을 줬다. 온라인 쇼핑몰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후기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면 포인트를 얹어줘 ‘판매 선순환’을 구축했다. 일각에선 1980~1990년대 이웃주민 사이에서 유행하던 ‘전통적인 입소문 마케팅의 진화’라고도 했다. 그만큼 리뷰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컸다. 전문가들이 “가짜 리뷰의 확산은 비대면 거래의 신뢰를 갉아먹는 심각한 일”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소비자 피해 우려 목소리
가짜 마케팅이 과열되면 판매자와 소비자가 동시에 피해를 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판매자는 판매자대로 추가 비용을 들이며 경쟁을 벌여야 한다. 소비자는 거짓이나 과장된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은 리뷰를 보면서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소통 구조를 왜곡하고 불신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박종호 한국소비자원 과장은 “리뷰는 소비자끼리 특정 상품을 검증하고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소비자의 영역이자 권한”이라며 “사실상 광고를 리뷰인 것처럼 속이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비대면 거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 같은 현상이 관행으로 굳어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네이버 관계자는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며 “가짜 리뷰를 골라내고 해당 계정을 이용 중지하는 등 대응 체계를 고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