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美 공화당이 추경 반대하는 이유

장진모 국제부장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의 악몽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우편투표의 후폭풍 우려 탓이다. 2016년 대선 때는 미국 유권자의 약 25%가 우편투표를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그 두 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투표 방식은 주(州)별로 다르다. 용지 발송과 회수, 기한 내 도착 여부 등을 놓고 혼선이 불가피하다.

개표 작업에 수일, 수주가 걸릴 수 있다. 무효표 논란과 다툼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대법원이 차기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까지 판결을 못 내리면 하원의장이 권한대행을 맡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해온 트럼프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양측 지지자들이 백악관을 에워싸고 큰 충돌을 빚고, 워싱턴은 대혼돈에 빠질 것이란 시나리오다.

나랏빚 걱정하는 美 보수당

이런 악몽을 막으려면 어느 한쪽이 큰 차이로 이겨야 한다. 그런데 지지율에서 앞서가던 조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역전당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면서 대혼전 양상을 예고했다. 유권자들의 분열은 극에 달하고, 네거티브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부족 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선거판 속에서도 미 정치권이 국가 재정을 다루는 자세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 경기부양책이 의회에서 몇 달째 공회전하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이 지난 5월 일찌감치 3조달러대 부양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이 “너무 많다”고 거부하고 있어서다. 실업률이 떨어지고 경기도 조금씩 살아나는데 나랏빚을 또다시 많이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 3~4월 이미 2조70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집권당으로서는 더 큰 부양책을 내놓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 그럼에도 공화당 중진들이 제동을 건 것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보수정당의 철학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올 들어 3조달러 늘어났다. 국가채무가 내년 3월 말이면 22조달러로 불어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차대전 후 처음으로 100%를 넘어설 전망이다. 진보 성향인 뉴욕타임스가 “국가 빚을 챙기는 정치인이 별로 없다”고 비판할 정도다.

퍼주기에 가세한 韓 보수야당

우리 국회도 지금 4차 추가경정예산안(7조8000억원)을 논의 중이다. ‘큰 정부’라는 미명 아래 ‘퍼주기’를 작정한 더불어민주당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국민의힘을 보면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빚더미 추경에 끌려다니는 건 고사하고 이제는 ‘더 퍼주자’고 한다.

정부·여당이 7세 미만 아동에게 1인당 20만원을 지급한 특별돌봄 사업을 4차 추경에서 초등학생으로 확대하는 안을 내놓자, 야당은 중·고생까지 포함하자고 주장해 여당을 놀라게 했다. 통신비 2만원 일괄 지급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돈으로 차라리 전 국민에게 독감백신을 무료 접종하자고 주장하는 게 바로 보수야당이다.

세수 부족으로 올해에만 104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런데도 야당이 정부·여당의 초팽창 예산을 견제하지는 못할 망정 퍼주기에 가세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보수정당마저 포퓰리즘 유혹에 넘어가면 국가 재정은 머지않아 파탄 날 것이다.미 공화당에서 추가 부양책에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이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주)이다. 그는 민주당에 동조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가채무 문제를 신경쓰지 않는 당신들은 사회주의자 민주당 의원과 다를 바가 없다.”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