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3법' 국회 처리 임박…재계 "독소조항 빼달라" 초비상

당정, 상법 개정안 등 정기국회 처리 의지 밝혀
경총·상의 회장 등 금주 국회 방문…김종인 위원장 등에 저지 호소할 듯

산업팀 = 정부와 여당이 주도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그리고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재계에 초비상이 걸렸다.특히 최후의 보루로 믿었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마저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표명하면서 재계는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재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글로벌 경제 위기 등으로 경영상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이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활동이 마비 상태에 놓일 수 있다며 막판 저지 활동에 나섰다.
◇ 재계 "독소조항, 기업경영 흔든다" 반발
재계는 일명 '공정경제 3법'에 기업 활동을 위협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반영돼 향후 경영활동에 큰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상법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조항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크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도록 돼 있는데 개정된 상법에는 감사위원회 의원중 최소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최대 주주의 의결권은 특수관계인과 합산해서 3%로 제한된다.정부와 여당은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영활동을 감시하도록 하는 취지에서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는 감사위원 선임 결정권에서 대주주가 배제될 수 있고 펀드나 기관 투자자들의 영향이 더욱 커지면서 경영권의 위협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마디로 투기자본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과거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공격했을 때처럼 외국계 증권사를 통한 총수입스왑거래(TRS)로 공시 없이 지분을 매집해 경영위협을 가할 경우에 뾰족한 방어책이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모비스(21.43%)와 정몽구 회장(5.33%), 정의선 수석부회장(2.62%) 등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지분이 29.38%에 달하는데 이 법이 시행되면 감사위원 선임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3%로 줄어든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2∼3대 주주나 해외투기자본들이 이사회에 진출해 회사를 압박하고 부당한 이득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최대 주주 의결권만 제한되면 적대적 인수 합병(M&A) 세력이 연합해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모(母)회사 주주가 불법을 저지른 자(子)회사 임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서도 재계는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처럼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법이고,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해 주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비상장회사 주식 지분의 100분의 1이나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 1만 보유해도 해당 회사가 50% 이상 출자한 회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요건이 너무 완화돼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당정이 만든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규제 기준을 현행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상장회사·20% 이상 비상장회사에서 모두 20% 이상으로 강화했다.

이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총수 일가가 지분 30%를 가진 기업에서 20%를 가진 기업으로 확대됨에 따라 대상 기업이 늘게 된다.

"정부가 지주회사 만들라고 권장하더니 규제만 더 늘었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이유다.

해당 기업이 이 규제를 피하려면 총수는 기존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하고 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여야 하는 등 기업 부담이 커진다.

재계에선 삼성생명, SK㈜, 현대글로비스 등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될 것으로 본다.

또 공정거래법의 전속 고발권이 폐지되면 앞으로 가격·입찰 등 중대한 담합(경성담합)의 경우 누구나 대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검찰 자체 판단으로 수사도 가능해져 고발·수사가 봇물을 이룰 것으로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대표회사를 중심으로 내부통제협의회를 만들고, 그룹의 주요 위험요인을 공시하도록 하는 등 삼성, 현대자동차 등 6개 복합금융그룹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도 함께 추진되면서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 다수가 경영권 방어와 지분 정리 등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들 법안이 시행되면 당장 현대차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때문에 글로비스 지분 9.9%를 매각해야 하고, 삼성은 보험업법이 시행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해 외국 투기자본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현재 해고자·실업자들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비조합원 노조 임원 선임을 허용하는 등의 노동조합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어 재계의 시름은 더 깊다.

재계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의 노조 활동이 허용되면 대립적인 노사관계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 경제단체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22, 23일 연달아 국회로
당정은 이들 경제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경제단체장들은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일제히 국회로 달려갈 태세다.

그간 경총, 전경련, 중견련 등 대표 경제단체들은 이번 정부 공정경제 3법과 관련해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며 꾸준히 반대해왔지만, 국회 통과를 앞두고 직접 국회를 찾아 '읍소'하겠다는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2일 국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과 만나 상법 개정안 등 경제 관련 법안의 문제점과 애로 사항을 전달하고, 상의가 마련한 대안 입법도 제시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국회에 가기 앞서 2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여야 가리지 않고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안을 추진해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며 "입법 전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 의견을 수렴하고 부작용, 대안까지 토론하며 옳은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22일 국회 방문에 이어 23일에는 김종인 위원장 등 야당 지도부를 만난다.

손 회장은 현재 법 개정안에 대한 기업의 우려를 전달하고 야당에서 법 개정 저지에 나서줄 것을 호소할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임대 3법처럼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법안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라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단체장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으로 국회로 달려가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위기 상황에서 경제단체간 통일된 목소리가 아쉽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경총과 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다중대표 소송제 등의 핵심 내용에 대해 대안 마련이 어렵다며 전면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대한상의는 보완 입법 등의 차선책 마련을 제안하는 등 법안 수용과 관련해 다소간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