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의 Fin 토크] 이재명의 '1천만원 마이너스통장' 논란

임현우 금융부 기자
정치인 이재명이 처음 신문 1면을 장식한 사건은 경기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이다. 2010년 7월 성남시장에 취임한 지 12일째 되는 날 “전임 시장이 남긴 빚 5200억원을 갚을 능력이 없다”며 채무지급유예를 발표한 것이다. 스스로 신용불량 낙인을 찍는 극약처방으로 통하는 모라토리엄을 지방자치단체가 선언한 첫 사례였다.

성남시가 방만경영에서 온 일시적 자금경색을 파산 일보직전의 위기로 과장했음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채권자(LH·국토해양부)가 “당장 다 갚으라”고 독촉한 적도 없었다. 모라토리엄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이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4년 뒤 그는 ‘모라토리엄 졸업’을 선언하고 자신의 치적으로 삼았다.이제는 경기지사이자 유력 대권주자인 그가 난데없이 금융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빚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 동일하다. 연 24%인 최고금리를 단숨에 연 10%로 내리자더니, 이번엔 모든 국민에게 연 1~2% 금리로 1000만원씩 마이너스통장을 뚫어주자고 한다. 대출도 복지라며 ‘기본대출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빚을 만만하게 보는 1위 대권주자

빚은 서민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존재다. 가족, 친지, 친구 중에 빚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목격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대출과 연체채무자를 위한 채무조정 등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제도도 신용사회의 근간을 흔들진 않는다. 신용도가 좋은 사람이 금융시장에서 우대받는다는, 당연한 상식 말이다.기본대출권의 논리는 이렇다. ①서민 대출을 민간에 맡겨두면 최고 연 24%를 받는다. ②고소득자는 연 1~2%인데 불공평하다. ③누구나 연 1~2%로 1000만원을 빌릴 기회를 주자. ④연체로 생긴 손실은 국가가 메꿔주자.

언뜻 보면 명쾌하지만 이 지사의 원문을 읽어보면 신용사회의 상식을 흔드는 대목이 수두룩하다. 이 지사는 금융회사가 연체 가능성을 금리에 반영하는 것을 “족징, 인징, 황구첨정, 백골징포”에 비유했다. 신용등급은 “금융 카스트 제도”라고 규정했다. 부자는 저리대출로 더 부자가 되고, 빈자는 영원히 초고금리에 갇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신용등급도 선진국만 부강하게 하는 카스트 제도인가.

이 지사는 “재정부담은 상환불능자가 1000명 중 1명이라면 5000억원, 500명 중 1명이라면 1조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현실에서 저신용자의 불량률(1년 내 채무불이행 비중)은 7등급이 7%, 10등급은 37%에 이른다. 그는 “모든 대출이자를 연 10%로 제한하면 미상환 손실도 최대 10%를 넘지 않아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연체로 인한 손실액을 줄이려면 심사를 깐깐하게 할 게 아니라 이자를 조금만 받으면 된다니, 이쯤 되면 ‘기적의 논리’다.

기본대출, 유권자들이 과연 원할까

무엇보다 최고금리 인하에 따른 ‘풍선효과’와 기본대출의 ‘재원조달 방안’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역대 정부마다 서민금융상품을 내놔 생색은 다 내면서 재원은 늘상 금융사 출연금, 휴면예금 등을 끌어 썼다. 기본대출은 어떤 구조인지 궁금하다.

최고금리를 확 내려도 대형 은행과 고소득 직장인은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저신용자가 합법적인 금융회사에서 돈을 구할 길부터 막힌다.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털 등은 상당수가 영업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은 80만 명 넘는 국민의 일자리가 달린 산업이다. 최고금리를 연 20%로 내리기로 공약한 문재인 정부가 이행을 머뭇거리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10년 전 성남시장 시절의 이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건전한 집안이라면 돈을 빌려 쓸 때 어떻게 갚을지 계획하고 쓴다.” 대다수 한국인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1000만원 마통’에 열광할 유권자는 이 지사의 기대만큼 많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코로나 사태에 영끌·빚투로 폭증한 가계부채의 연착륙 방안에 대한 생각을 밝혀줬으면 한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차기 대통령 임기에 터질 시한폭탄이다.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