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더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시로 쓰는 게 중요"

절필 선언 이후 7년 만에 신작 '능소화가…'로 복귀
"박근혜 정부 때 불의한 권력 맞서려고 시 포기…세상 점점 살기 좋아질 것"

"80년대에 제 머릿속에는 민주화, 통일, 노동 해방 이런 개념이 너무 많았습니다. 조금 더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시로 써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한동안 절필 선언을 하고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인 안도현(59)이 오랜만에 본업인 시의 세계로 돌아왔다.

지난 2013년 절필 선언 이후 7년 만에 처음 펴내는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창비)를 통해서다. 2012년 '북향' 이후 8년 만에 펴내는 11번째 시집이다.

시집 제목처럼 시인의 복귀 일성은 1980~90년대를 지배했던 참여시 계열에서 벗어나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안도현은 2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80년대에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시인으로서 세상의 큰 움직임을 시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가 세상을 바꾸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실제 믿었던 적 있다"면서 "살아보니 시가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시가 할 일은 작은 것에 더 관심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절필 선언 이유에 대해선 "불의한 권력에 시로 맞서지 않고 시를 포기함으로써 맞서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라며 "그런 생각으로 몇 년 동안 박근혜 정부 때 시를 쓰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를 지배하는 게 전두환이라면 똑같은 방식으로 20대를 살아야겠지만, 그런 악순환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며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므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시집을 화초, 식물, 어머니, 고모 등 일상의 정겨운 것들을 소재로 쓴 서정시로 채웠다.

40년 만에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돌아가 터전을 잡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나 고모 같은 분들의 삶 속에 수사(修辭)보다 더 시적인 것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보통 지어내고 꾸며내고 만드는 게 시라고 생각하는데 이 세상 살아온 분들의 삶 자체, 팩트 자체가 시가 아닐까요?"
안도현은 이번 시집을 통해 '짧은 시'의 형식미를 부각하는 시도도 했다.

그는 "다섯줄 이내 짧은 시들을 여러 편 써보고 싶었다"면서 "특히 관심 가는 식물들에 대한 느낌과 내 체험들을 '시'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4년 등단한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는 구절이 포함된 시 '너에게 묻는다'로 유명해졌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의 공동 선대위원장을 지냈고,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당시 후보의 문화계 외곽 조직에 참여했다.

최근엔 소설가 공지영 등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활동도 했다.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