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배터리데이, 국내 2차전지주에 '악재'로 읽힌 이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2일(현지시간) 주주총회 및 배터리데이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테슬라 배터리데이 갈무리
23일 오전(한국시간) 테슬라의 배터리데이 행사가 진행됐다. 시장 판도를 바꿀 신기술 발표는 없었다.배터리 공정 혁신을 통한 비용절감이 주 내용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배터리 가격 경쟁 시대를 예고했다. 배터리 업체 뿐 아니라 완성차 업체들의 장기적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내용이라는 평가다.

그 영향으로 국내 2차전지 관련주들 뿐 아니라 글로벌 배터리주들이 배터리데이 종료 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증권업계에서는 "2차전지주의 성장성을 근본적으로 훼손될 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테슬라가 직접 배터리 생산을 늘리겠다고 한 것이 투자심리에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테슬라 배터리데이 핵심 내용은

테슬라는 배터리데이에서 주행거리는 54% 늘어나고 배터리팩의 킬로와트(KWh)당 비용은 56% 줄어드는 배터리 공정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존 130~150달러선인 KWh당 비용을 80달러대까지 낮추겠다는 계획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방식은 대형화와 공정 개선이다. 우선 기존에 사용됐던 21700(직경 21mm, 길이 70mm) 원형 배터리가 46800(직경 46mm 길이 80mm)로 대형화된다. 배터리 용량은 크기에 절대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탭리스'라고 불리는 특허 기술을 통해 원통형 배터리 셀 제작 과정상 공정을 간소화한다. 탭은 전원공급장치와 배터리를 연결하는 장치다. 탭은 전자의 이동통로 역할을 하는데 '탭리스' 기술은 전자가 면 전체를 도체로 활용해 이동하도록 한다. 전자의 이동거리가 250mm에서 50mm로 줄어들기 때문에 열효율 및 출력이 개선된다는 게 테슬라측 설명이다.

테슬라는 또 건식전극 및 고속 연속 생산 공장을 도입해 생산성도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습식 공정에서의 용매 휘발 공정을 빼면 원재료 비용을 줄이고 공정을 간소화할 수 있다. 새로운 형태의 음극활 물질인 일명 '테슬라 실리콘'을 사용해 리튬 저장량을 높이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양극활 물질로는 니켈 함유량을 높이는 하이니켈로 가겠다는 방향성을 내놨다. 다만 테슬라는 배터리 자체 생산이 언제부터 가능한지 언급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일론 머스크 CEO의 트위터 글을 봤을 때 2022년까지는 생산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공정 자체도 아직 미완성이다. 공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따른다.

배터리데이에서 업계를 뒤흔들 만한 새로운 신기술을 기대했던 투자자들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 영향으로 테슬라는 22일(현지시간) 5.60% 떨어진 424.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마감 후 장외거래에서도 7% 가까이 하락했다.

글로벌 2차전지주에 왜 악재됐나

배터리데이가 진행될 때만 해도 '2차전지 업체들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 증권업계에서도 2차전지주를 눌러왔던 불확실성이 소멸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들이었고 신기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2030년까지 장기계획 위주의 내용들이라 장기비전을 확인한다는 데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국내 업체들에게 불확실성으로 작용된 이벤트가 소멸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장이 열린 뒤 투자자들의 판단은 달랐다.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 2차전지주가 배터리데이 이후 일제히 하락했다. 국내 완성 배터리업체인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은 물론 2차전지 장비·소재 업체들도 하락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전해액 첨가제 업체로 배터리데이 전 한달 간 국내 2차전지주 가운데 가장 상승폭이 컸던 천보도 장중 4% 넘게 떨어졌다.

테슬라와 가장 긴밀히 협력하는 중국의 CATL도 2% 넘게 떨어졌다. 일본의 파나소닉도 4% 넘는 낙폭을 보였다. 증권업계가 보는 2차전지주의 약세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단기적 요인이다. 테슬라가 배터리 비용을 56% 절감하겠다는 발표 자체가 악재였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56% 자체를 2차전지 업체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훼손할 만한 숫자로 받아들였다"라고 설명했다.

또 2차전지주들의 장기 성장성과 수익성에 대한 우려를 키운 측면도 있다. 테슬라의 배터리 내재화 계획이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개발 계획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2022년에 100GWh, 2030년에 3000GWh의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을 내놨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2022년 연간 전기차 예상 판매량인 175만대를 적용했을 때 약 30~40% 가량은 자체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하겠다는 것"이라며 "테슬라가 장기적으로 보고 있는 내재화 비율이 30-40%에 이른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럽다"고 설명했다.

테슬라는 이날 2만5000달러 수준의 보급형 전기차 모델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인 4만 유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테슬라가 가격경쟁을 예고하게 되면 벤츠·BMW·폭스바겐 등 유럽 내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테슬라와 전기차 가격경쟁을 본격화할 수 밖에 없다. 테슬라가 저가모델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게 되면 다른 업체들로서는 추격에 나서야 하기 대문이다.

특히 테슬라는 이날 자율주행 수준을 높인 모델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테슬라가 자율주행을 통한 빅데이터를 다른 업체들보다 빠르게 확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가격경쟁력 뿐 아니라 기술경쟁력에서도 상당한 우려를 가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기차 원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배터리 비용을 줄여야 한다. 업계에서는 배터리데이를 계기로 이들 업체가 배터리 내재화에 새로 뛰어들거나 기존 내재화 계획을 당기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 연구원은 "전세계 2차전지주들이 조정을 받는 건 이들이 공급하는 각 자동차사의 경쟁력이 테슬라의 저가 모델 발표로 상대적으로 위협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에 배터리를 공급중이다. 삼성SDI는 BMW의 핵심 공급사다. 벤츠, 폭스바겐, 포드 등에도 국내 배터리 3사가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