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생명 걸린 보건의료는 저가낙찰 관행 벗어나야

정부의 독감백신 무료 접종이 사상 처음 중단되고 국가백신 500만 명분의 폐기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총괄대변인은 어제 “해당 백신의 품질검사 결과를 보고 활용 여부 등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접종 일정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번 사태는 유통업체(신성약품)가 백신을 상온에 노출시킨 실수에서 비롯됐다지만, 국가백신 유통관리에 큰 구멍이 뚫린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K방역’을 자랑하던 정부가 부실관리로 문제를 키운 점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초유의 백신 접종 중단은 빠듯한 배송일정, 경험 없는 유통업체의 문제 등이 중첩된 결과여서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고질적인 저가낙찰 등 공공조달시장의 후진적 관행이 투영된 ‘예고된 사고’이기 때문이다. 김 대변인은 “(코로나라는) 특별한 상황을 감안해 독감백신 접종 시기를 (앞당겨) 예년에 비해 한 달여 먼저 착수했다”고 해명했지만 유통업체 선정은 오히려 작년보다 1개월가량 늦어졌다. 민간 납품 시 도스당 1만2000원은 받아야 할 백신을 정부가 입찰과정에서 8700원 선의 낮은 단가를 고집해 네 번씩이나 유찰된 영향이 컸다.일각에선 경험 있는 기존 유통업체들이 제약사 리베이트 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신성약품이 낙찰받았을 뿐, 저가낙찰 탓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시장가격에 훨씬 못 미치는 납품단가로 인해 제약사들이 등을 돌리자, 유통업체들이 리베이트를 줘야 했다는 점에서 근본 문제는 정부 조달의 낮은 단가라고밖에 볼 수 없다. 더 가관인 것은 전 국민 통신비 지원에 9300억원을 쏟아부으려고 했던 정부가 정작 국가 백신은 ‘싸구려’로 조달하려 했다는 점이다. 도스당 1만원만 보장해줘도 예산은 160억원만 더 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공공조달시장에서 끊임없이 지적돼온 저가낙찰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칠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도 “입찰 방식의 적정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계약법은 정부가 일반경쟁입찰 외에도 입찰자의 기술능력, 재무상태, 계약이행 성실도 등을 따져 ‘적격심사제’를 활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의약품, 의료기기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물품은 저가낙찰의 덫에서 벗어나도록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