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 '선의의 피해자'? 국민 대다수다 [여기는 논설실]

임대차 3법 개정 이후 주택임대 물량이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지난달 서울 잠실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전·월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선의(善意)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지만, 지금은 투기의 불부터 꺼야할 때'라는 취지로 말했다. 일주일도 지난 얘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선의의 피해자'란 말이 두고 두고 여운을 남겨서다. 이는 '집값 안정'이라는 공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피해 본 측을 말한 것 같다. 어렵게 집을 장만하고도 갑작스레 강화된 대출규제에 집을 포기한 사람부터 떠오른다. 하지만 복잡다양한 주택시장에서 '나도 선의의 피해자'란 생각에 억울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답변 과정에서 불쑥 나온 용어일 수 있으나, 꼽씹어볼 대목이다. 선의의 피해자라면 어떻게든 구제해주는 게 이치에 맞고 정의롭다. 그런데 총리는 "힘들더라도 참아달라"고만 했다. 여기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부'는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3년새 집값이 절반 이상 폭등해 무주택자들은 망연자실하고, 집이 두채만 있어도 투기세력으로 몰려 세금폭탄을 맞고, 1주택 실수요자도 대출규제와 임대차보호의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현실이다. 선의의 피해자는 무시해도 무방한 '일부'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란 사실을 이 정부 사람들만 모르는 걸까.

참으면 '이생망' 된다는 위기감

정 총리는 그날 1주택 실수요자의 대출규제(LTV) 한도를 높여줘야 한다는 일리 있는 문제제기에도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일 수 있는 시그널을 줘서는 안된다"며 정책 보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리고는 "투기의 불을 끄면 1주택자에게 정상적인 정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는 '참아달라'는 게 답변의 요지다.

결국 이런 정부를 믿고 지금은 집 사지 말라는 얘기인데. 과연 믿고 참으면 무엇이 돌아올까. 정 총리는 "중장기적으로 불을 다 끄는 것이 선의의 피해자에게도 유리한 때가 온다"고 두루뭉술하게만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싶다. 이미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 5년의 집값 폭등기를 겪으며 '부동산 루저(loser·패배자)'가 되면 같은 세대의 평균적인 경제적 부(富)를 평생 못따라간다는 인식이 퍼졌다. 한번 더 찬스가 오더라도 그 찬스를 거머쥘 경제적 여력이 모두 다 소진돼 회복불능의 '이생망'(이번 生은 망했다) 신세가 된다는 위기의식이다.

실제로 이런 과정을 겪었다고 주변에 증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폭등한 집을 장만하느라 30대 가정은 맞벌이에 전력해야 하고, 경제적 부담과 육아 부담으로 둘째 아이 낳을 생각도 못하고, 담보대출 이자 갚느라 생활비는 마이너스대출에 기대는 속쓰린 경험을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위기감이 고스란히 지금의 2030 세대에 전해지고, 주택 패닉 바잉(공포 구매)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제는 '집을 파시라'고 하더니, 이제는 '(집 사는 걸)참으시라'고 한다. 곧이 곧대로 들을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집값 떨어지면 과연 살 수 있을까

물론 주택시장의 과열이 한풀 꺾이고 경기 사이클이 바뀌면서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2010년대 초중반까지 실제로 그랬다. 집값이 최고점 대비 20% 정도 떨어진 아파트들이 수두룩했다. 이때가 실수요자들에겐 말 그대로 '찬스'였다.

하지만 당시는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적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다른 자산에 투자하지, 왜 집을 사느냐는 식이었다. 이런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해도 오를 가망이 안보인다면, 실수요자라도 중간가격이 9억원을 넘어버린 서울 아파트를 매입하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 경험상 그러기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수년간 아파트 신규분양 시장은 분배정책 강화로 청약가점제 비중이 높아지고, '50대 가장-다자녀 가정-오랜 무주택기간' 등 요건을 갖춘 고득점자 아니면 당첨이 힘들어졌다. 당첨되더라도 중도금 대출 등이 막혀 현금 동원력이 없는 사람은 '재당첨 금지 기간' 불이익을 감수하며 분양권을 날려야 할 판이다. 총리가 "1주택자에게는 어떻게든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 말은 아무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그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말일 뿐이다.
최근까지 신고가 행진을 이어간 서울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전경. 한경DB

이 정부 사람들 빼곤 모두 피해자?

주택 실수요자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6월 이후 6·17, 7·10, 8·4대책 등 3개월에 걸쳐 매달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지만, 시장 안정은 아직도 물음표다. 그동안 주택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고, 시장 과열에도 꼭지점이 있기 마련이고, 한번 매수심리가 꺾이면 순식간에 차가워진다는 점에서 조만간 집값이 하향안정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일부 지역의 매매와 전세가격은 여전히 신고가(新高價) 행진이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내년 7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개포지구 전용 84㎡ 아파트 분양권이 30억여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개포동도 3.3㎡당 1억원 시대가 된 것이다. 강남도 아닌데 전용 59㎡이 실거래가 15억원을 넘으며 3.3㎡(평)당 6000만원을 돌파한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59.8㎡)이 지난달 중순 15억9000만원에 팔렸고, 광장동 광장힐스테이트(59.9㎡)도 지난달 15억원에 매매됐다.부동산 대책이 주택 수요자들에게 기다려도 된다는 신호를 줄 정도로 신뢰를 주지 못했고, 공급대책 또한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준이 되지 못한 때문이다. 대신 △양도세 등을 과도하게 부담하느니 자식에게 증여하는 다주택자가 많아지고 △다주택을 줄여 서울 강남의 일명 '똘똘한 한채'로 바꾸려는 수요 때문에 주택시장 열기는 아직도 뜨겁다.

결과적으로 다주택자들은 세금 걱정에, 무주택자는 지금이라도 무리해 집을 사야 하는지 고민에 밤잠을 못이룬다. 최근엔 전세기간 종료를 앞둔 주택을 매입해 내집장만을 한 사람들이 임대차법 개정으로 보호받는 세입자가 계약 2년 연장을 주장할 경우 자기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때문에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구입할 때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야당 의원이 발의하기도 했다.

총리가 말한 '선의의 피해자'는 이처럼 전국 곳곳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정부가 집으로 불로소득을 쌓는 사람들과 전쟁을 하더라도 선의의 피해자는 줄이려는 노력을 적극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리면 어쩌나. 이들 또한 시장심리를 형성하고, 시장의 변수를 좌우한다. '참으라'고만 할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시장안정책과 공급대책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