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볼펜은 만지지도 않아요"…카드 모집인 '눈물'

사진=한경DB
“대형마트 정식부스에 있어도 확진자 취급을 해요. 우리가 쓰던 볼펜도 쓰려고 하지 않을 정도로요. 10년 넘은 분들도 많이 그만두는데 당장 생계가 걱정입니다.”

한 카드사 영업본부에서 일하는 설계사 최모씨(38)는 “대면 영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카드 모집인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소비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될까 카드 모집인들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어서다. 생계형 노동자가 많은 카드 모집인들의 특성상 한시적으로나마 비대면 영업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업계에서 나온다.
23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말 기준 7개 카드사의 모집인은 1만655명으로 지난 6월에 비해 1048명 줄었다. 지난 6월까지는 전년말보다 321명 늘었는데, 급격히 감소 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카드사들은 올 하반기 들어 카드 모집인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기존 인원만 유지하되 그만둔 자리를 새로운 인력으로 채우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대면영업이 매우 어렵다”며 “디지털 발급으로 빠르게 넘어오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만두는 카드 모집인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생계를 이을만큼 모집인들이 돈을 벌 수 없어서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게 많은 설계사들의 설명이다.

카드 모집인들이 받는 수입은 발급수당과 이용수당으로 나뉜다. 카드 모집인들은 카드 회원을 한 명 유치할 때마다 발급 수당으로 15만~20만원, 이용 수당으로 3만~10만원을 받는다. 이용 수당은 카드 회원이 매월 일정액 이상 쓰면 카드 모집인들이 받는 수당이다. 예컨대 월 40만원 이상 3개월동안 쓰면 이용수당 5만원을 받는 식이다.

경제 불황으로 소비 자체가 줄어 이용 수당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 모집인들의 설명이다. 최씨는 “당장 발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카드를 쓰지 않아서 이용 수당으로 얻었던 수입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가입조건으로 이용 수당만큼 먼저 현금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늘면서 생계를 잇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4일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13일 사이 카드 가맹점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5% 감소했다. 새로운 카드 회원을 유치해도 이용 수당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카드 발급 채널도 온라인으로 빠르게 넘어오고 있다. 신용카드 온라인 발급 비중은 지난해말 26.6%에서 지난 6월말 34.5%로 7.9%포인트 껑충 뛰었다. 지난해 1년동안 약 8%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온라인 발급 증가세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비대면 발급에 마케팅 비용을 더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집인들에게도 비대면 영업을 한시적으로 풀어달라는 불만도 있다. 카드 모집인들은 현행법상 텔레마케팅 방식으로 카드 영업을 하면 불법이다. 카드 회원이 텔레마케팅 방식에 동의를 했는데도 대면 상으로 서명을 받지 못하면 최고 5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 대면 영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당분간 생계를 이으려면 한시적으로라도 비대면 영업을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모집질서를 위반했다고 벌을 주는데 같은 비대면 방식으로 영업하는 카카오페이나 토스는 되고 왜 모집인은 질서 위반이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카드사들은 생계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신한카드는 3월부터 5월까지 카드 모집인들의 소득을 보전해줬다. 비교적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들던 6월부터 지난달까지는 평상시처럼 운영하다가 이달 들어 수수료 최저 지급 기준을 낮추는 식으로 다시 지원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비대면 발급으로 넘어오는 대세는 어쩔 수 없지만 카드 모집인들의 생계를 위해 한시적으로 협회나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