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위기의 자본주의…"조세부담 낮추고 공교육 질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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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선 자본주의“현재 세계는 동일한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이런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 선례가 없다. 동일한 경제 원리란 합법적 자유 임금의 노동력과 대부분 개인 소유 자본에 의해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 체제, 그리고 분권화된 조정력이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정승욱 옮김 / 세종서적
480쪽│2만1000원
'불평등 연구 석학'이 쓴 자본주의 미래
세계 양대 축 美·中 경제체제 분석
미국의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는
일한만큼 보상 받지만 빈부격차 심화
미국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 대학원 객원석좌교수가 저서 《홀로 선 자본주의》에서 정의한 자본주의다. 전작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에서 ‘코끼리 곡선’ 이론으로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를 논한 저자는 이번 신간에선 자본주의로 단일화된 지구촌을 대전제로 세계 시장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의 자본주의를 분석한다.밀라노비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로, 중국식 자본주의는 ‘국가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 직역하면 ‘정치적 자본주의’지만 정치학계에선 이 용어로 통용)’로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는 자본소득이 높을수록 노동소득이 많다. 고전적 의미의 자본가와 달리, 자유성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에선 최고경영자(CEO)와 같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이 일한다. 하지만 돈 많고 교육 수준이 높은 이른바 ‘노동 엘리트’들이 가정의 형태로 결합하면서 계층 간 이동 기회가 줄었고, 소득과 부의 대물림이 더 공고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국가 자본주의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매우 크다는 특징이 있다. 시장을 통제하면서도 자본주의를 최대한 활용한다. 능력 있는 전문 관료를 활용하고 특정한 제도와 법의 속박을 무시한다. 국익에 따라 민영기업도 조정할 수 있다. 국가 자본주의 체제의 약점은 지속 가능성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관료들이 법 집행을 제멋대로 하면서 부패가 만연하고, 이런 부패는 불평등을 낳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부패가 심해지면 성장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저자는 일단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중 어느 한 쪽의 편은 들지 않는다. 다만 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반(反)부패운동은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법치가 아니라 인치에 의존한다는 치명적 약점도 있다.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체제 전체가 흔들리고, 나라의 흥망까지 좌우한다.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해선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논증한다. 이를 위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조세 정책의 조정, 공립학교의 질 향상, 이주자의 시민권 향상 등은 모두 정치적 영역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들이다.저자는 미래 자본주의 시스템에 주목한다.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의 절충점을 어떻게 마련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인위적으로 탄생된 국가 자본주의는 태생적 부패를 해결하기 어렵다.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났지만 빈부 격차와 금전 만능주의, 금권 정치 우려가 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는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가 좀 더 진보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 대안으로 ‘대중적 자본주의’를 제시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산층의 조세 부담을 줄이고, 공립학교의 질을 높여 교육 분야의 부익부 빈익빈을 감소시키는 등 계층 간 격차를 좁히는 데 주력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북한을 언급한다. 북한 역시 앞으로 국가자본주의 혹은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북한은 폭력적 민족주의 성격의 정권”이라며 “자본주의라는 생산 방식의 세계적 지배에 저항한다”고 꼬집는다. 또 “동아시아는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말미암아 현대 세계의 3대 경제 및 정치적 극점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덧붙인다.이 책은 각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거쳐 진화해 온 자본주의 구조를 다소 거칠게 구분했다는 인상이 있다. 풍부한 데이터 활용은 이 책의 백미다. 미국과 유럽의 최신 자료, 접근하기 어려운 최근 중국 내부 자료 등이다. 중국 자료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도시·농촌별 지니계수와 공산당원과 비당원의 행정구역별 수입 차이 등까지 다양하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