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가 재택근무 매뉴얼까지 만들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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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7
정부가 재택근무 매뉴얼을 내놨다. 공무원이나 산하의 공공기관과 공기업용이 아니라 민간 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과 가진 비대면 간담회 자료를 내놓는 형식을 거쳤다. 하지만 자율 채택이나 권유 사항으로 시작한 게 법이나 행정 제도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적 행정 전통’으로 보아 통상 그렇게 된다. 정부 판단이 들어간 것이라도 법제화되는 것과 관련 업계가 자율로 채택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정부가 매뉴얼까지 내놓은 데는 이유도 있고 사정도 있다. 재택근무 확대를 전제로 코로나 확산을 막아보자는 것이고, 재택근무로 인한 노사 간의 다양한 갈등을 최소화해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늘어나는 정부 간섭이 용인될 수 있나
찬성 성큼 다가온 ‘재택시대’ 어떻게든 근무 기준은 필요
예고도 없이, 대비도 없이 재택근무 시대에 성큼 들어섰다. 코로나 위기로 비롯됐다지만, 사회적 혼란이 심하다. 근로의 정의와 기준부터 시작해 근로 조건과 환경, 근로에서 파생되는 온갖 갈등과 위험에 대비한 기준의 재정비가 절실해졌다. 일은 해야 하는 데 비용이나 장비를 누구 비용으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부터 산업 안전과 보건에 대한 규정이나 규칙도 없다. 한마디로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간단한 예로 재택근무 중 잠시 몸을 풀기 위한 휴식이나 화장실로 가는 도중에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고 가정하자. 산업재해라고 볼 수 있는가. 그에 대한 판단은 누가 무엇을 근거로 할 것인가. 간단하지 않다. 이 판단에 따라 보험금이 지급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손해배상에 대한 청구가 가능할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법원으로 분쟁이 간다고 해도 법원 역시 판단의 기준이 있어야 합리적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재택근무 중에 출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것인지, 학교의 영양사나 보건교사 같은 직종이 원천적으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것인지 등에도 기준이 필요하다. 기업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어떤 사용자 측도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재택근무의 대상자부터 장소까지 어디까지가 대상인지도 명확하지 않으니 재택근무로 인한 생산성 증감이나 고용 관계의 변화 등 밀려오는 문제는 감당이 안 된다.기업이라면 사규에 따르면 되고 노사 간 합의로 운영하면 된다. 하지만 사규가 규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노사 간에 견해차가 생기는 부분도 나올 것이다. 모호한 영역이 많은 만큼 정부가 강제화하지 않는 선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 노사 간 갈등 줄이기나 분쟁 해결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반대 민간 자율에 맡길 일 지나친 정부 간섭은 부작용 초래
정부가 만든 매뉴얼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주변의 카페로 가서 일하면 근무지 이탈이니, 복무 위반 소지가 있다는 식의 판단까지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인가. 재택근무 시간 중에도 자택 방문자를 확인하거나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으며, 집 전화를 받거나 무더위 때 샤워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부가 말하지 않아도 기업과 종사자가 상식적·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할 문제다. 이런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일까지 이것은 맞고 가능하며, 저것은 불가능하고 틀리다는 지침서를 내놓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기업이 알아서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기업이 ‘학생’도 아니고, 웬만한 공무원보다 기업 쪽 인력이 국제 경험이나 ‘맨 파워’도 더 좋은 시대다. 재택근무라고 하지만 근로자의 계약상 신분은 물론 근무 형태도 업종·직종·기업별로 너무나 다르다. 이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매뉴얼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두루 통용될 정도라면 가이드라인으로 효용성도 없다고 봐야 한다.근본 문제는 정부의 과잉 개입과 간섭이다. 시작은 가이드라인이지만 규제로 변하고 법제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은 강제 조항이 되거나 융통성이 없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될 것이라면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100대 기업에 대한 실태 조사 등을 보면 재택근무는 이미 생산성에 문제가 없다. 자율로도 잘 시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괜히 나서 새로운 논란을 만들고 분쟁을 부추길 이유가 없다. 직원 자율로, 노사 합의로, 상식적으로 잘 운용되고 있으며, 그래도 문제가 되면 법원 판단에 맡기면 된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과 각 기업의 최적 근무 행태를 정부가 제대로 알고나 있나.
√ 생각하기 - 권고가 강제가 되어서는 곤란
최저임금 제도에 대해 많은 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가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임금이 업종·지역·연령별로 크게 다른 현실과 생활물가의 격차도 적지 않아 ‘획일적 강제 방식’에 따른 문제점이 적지 않다. 권고로 시작했다가 공공부문에서는 사실상 강제로 일괄 추진돼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도 그런 속성이 있다. 선의로 시작했고, 취지나 명분도 나쁘지 않았지만, 본말이 바뀌면서 의외의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가 나설 때 늘 경계할 일이다. 기업 경영에서는 특히 자율 보장과 신속 유연한 상황 대응이 중요하다.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 잘 되고 있는 분야에 정부가 굳이 나설 이유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재택근무=놀기’로 잘못 인식될 수도 있고, 근로자가 과도하게 감시받는다는 기분을 가질 수도 있다. 혁신 기업의 아이콘으로 재택근무를 앞서 도입한 미국 넷플릭스가 ‘규칙 없음(no rules rules)’을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관리·대응 방식이라고 했던 이유도 새겨볼 만하다.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