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은 北 피격 사망 공무원 "월북 가능성"…유족은 "말이 안돼"

연평도 어민들 "바다 40㎞ 이동 이해 어려워"…동료들 "월북 얘기한 적 없어"
서해 북단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월북 가능성을 놓고 당국과 유족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25일 관계 당국 등에 따르면 군과 해양경찰 등 당국은 공무원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유족들은 월북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종 해상 인근의 연평도 어민들도 혼자 수영해서 가기 힘든 거리라는 반응이었고 동료들은 사망 공무원이 평소 월북이나 북한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 군·해경 "조류 잘 알고 슬리퍼 남아 있어"군과 정보 당국은 지난 21일 실종된 해수부 산하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 A(47)씨가 월북을 시도하다가 북측 해상에서 표류했고, 22일 북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A씨가 연평도 인근 해역의 조류를 잘 알고 있고 해상에서 소형 부유물을 이용했으며, 북한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토대로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해경도 전날 A씨가 타고 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현장 조사를 한 결과 유서 등 월북 징후를 전혀 남기지 않았다면서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그 근거로 실종자의 신발이 선박에 남아 있었던 점, 당시 조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평소 채무 등으로 고통을 호소한 점, 국방부 첩보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종된 선박에서 유서 등 월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고 선박 내 폐쇄회로(CC)TV 2대도 모두 고장 나 실종 전 행적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유족 "공무원증도 가지고 가지 않아…당국 책임회피 의심"공무원 A씨의 유족은 월북 가능성에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A씨의 친형 이모(55)씨는 전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동생이 타고 있던) 선박에 공무원증과 신분증이 그대로 있었다"며 "북한이 신뢰할 공무원증을 그대로 둔 채 월북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바다에서 4시간 정도 표류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공포가 몰려온다"며 "동생이 실종됐다고 한 시간대 조류의 방향은 북한이 아닌 강화도 쪽이었으며 지그재그로 표류했을 텐데 월북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군 당국이 책임 회피를 위해 월북한 것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동생이 21일 실종된 뒤) 24시간 이상을 우리 영해에 머물렀을 텐데 그 시간 동안 발견을 못 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냐"며 "국방부는 북한이 동생에게 총을 쏘는 광경을 봤다고 하는데 그것만 봤다는 것인지 이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동생을 나쁜 월북자로 만들어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문"이라며 "동생이 우리 영해에 있었던 미스터리한 시간을 덮으려는 것으로 의심이 든다"고 강조했다.

A씨가 실종되기 전 채무로 힘들어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돈 없고 가정사가 있다면 다 월북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선박에 남아있었다는 신발(슬리퍼)에 대해서도 동생의 것인지 확실치 않으며 밧줄 아래 있었던 상황이라 월북 가능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수영 선수도 힘든 이동"…월북 징후 없어

연평도 주변 바다 상황에 밝은 어민들은 대연평도보다 남쪽에 위치한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사람이 북한(해상)까지 갈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평도 주민 황모(60·남)씨는 "연평도 인근 바다의 흐름을 보면 섬을 기점으로 물길이 도는데 아무리 어업지도선에서 일하며 바다 상황에 밝았더라도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군 당국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2일 오후 3시 30분께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측 수산사업소 선박에 의해 발견됐다.

이는 최초 실종 사건이 접수된 지점인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약 38㎞ 떨어진 해상이다.

한 50대 어민은 "첨단 장비를 착용한 것도 아니고 구명조끼와 부유물만 가지고 40㎞에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건 수영 선수라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A씨의 동료들도 해경과 해수부에 A씨에게 월북 징후가 없었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전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A씨가 주변에 평소 월북 얘기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동료들과도 그런 얘기를 나눴던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월북 가능성)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면서 "증언도 당연히 없다"고 답했다.

실종된 어업지도선을 조사했던 해경도 A씨가 월북이나 북한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지도선에 동승했던 동료들이 진술했다고 전했다.
◇ 유족, 실족 가능성 제기…해수부 "가능성 작아"

유족 측은 조심스럽게 실족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키가 180cm인 A씨가 허벅지 높이인 난간 너머 바다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A씨의 형은 동생이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로 옮긴 지 3일 정도밖에 안 된 적응 기간이었다는 점도 실족 가능성의 근거로 들었다.

해경에 따르면 A씨는 최근 3년간 근무했던 어업지도선에서 지난 14일 근무지 이동 발령을 받고 17일부터 무궁화10호에서 근무했다.

이씨는 "(실종 시간으로 추정되는) 새벽 1∼2시는 졸릴 시간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실종됐을 수도 있다"며 "라이프재킷(구명조끼)을 입었다면서 월북했다고 하는데 평상시 입어야 하는 것으로 월북과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A씨가 단순 실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해수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A씨가 배에)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놓았고 사고 당일 기상이 아주 양호했고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며 실족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