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노출' 백신 어떻게 병원으로 흘러갔나…"사고 파악 늦어"

사고파악 늦어 이미 유통…"일선 병원서 구분 않고 접종"
"사용중단 안내 늦었다" 지적도…일각서 "접종 사례 더 나올 수도"
서울 한 병원에서 간호사가 독감백신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사용이 잠정 중단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일선 병원에서 약 100여 명에게 접종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백신 관리에 구멍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질병관리청(질병청)에 따르면 일부 물량이 상온에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백신은 정부와 조달 계약을 맺은 '신성약품'이 공급한 제품이다.질병청은 상온 노출 사고가 백신 효능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해 지난 21일 국가 접종 사업을 일단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사고 물량 가운데 시중에 유통된, 즉 접종이 이뤄진 물량은 없다고 밝혔다. 질병청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도 해당 백신으로 접종된 사례가 없냐는 기자단 질의에 "접종이 이뤄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접종 여부는 의료기관별로 공급한 백신의 제조번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상온 노출 사고가 발생한 백신으로 독감 접종을 한 사람이 이미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파악된 접종 인원만 서울, 부산, 전북, 전남 등 총 4개 지역에서 105명이다.보건당국은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사고 파악에서부터 사후 통제까지 허술한 점을 드러내게 됐다.

질병청이 파악한 결과 접종자 105명 가운데 지난 22일 이전에 접종한 사람이 63명, 22일과 23일 접종한 사람이 각각 34명, 8명이다.

질병청이 지난 21일 제보를 토대로 백신 접종 중단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이미 일선 의료기관에서 접종이 이뤄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사고가 늦게 파악되다 보니 일선 의료기관에 유통된 물량이 접종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일선 의료기관의 백신 관리에도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일반적으로 국가 조달 백신 물량과 개인 의료기관에서 구매한 물량은 구분해서 보관·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접종이 이뤄진 한 의료기관에서는 이를 함께 사용했다.

결국 이곳에서 독감 접종을 한 594명 가운데 60명이 정부 조달 물량으로 접종받았다.이처럼 일선 의료기관에 이미 배송된 물량이 있을 가능성을 간과한 채 질병청이 지난 23일 '접종 사례가 아직 없다'고 발표한 것은 보건당국의 현황 파악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발표가 성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당국의 사후 통제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질병청은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일시 중단하면서 정부 조달 계약으로 공급된 물량의 로트(Lot) 번호를 파악해 지난 22∼23일에야 보건소와 의료기관에서 해당 백신을 사용하지 않도록 안내했다.

로트 번호는 개별 제품보다는 큰 단위의 제조 일련번호로 볼 수 있다.

일선 의료기관에 상온 노출 사고가 있는 백신 물량의 로트번호를 전달하는 시점이 늦어져 접종을 신속하게 중단하라고 알리는 일도 늦어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상온 노출 사고가 발생한 백신의 로트 번호의 경우,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로트번호를 입력할 수 없도록 등록이 막혀 있었다"며 "로트 번호 및 접종 금지 안내는 22일 밤늦게 공지했다"고 전했다.

질병청은 "시스템에 전산 등록을 할 수 없다는 안내(공지)하는 등의 조처는 23일 저녁에 완료했다"고 덧붙였다.

이미 상온 노출 사고가 지난 21일부터 대대적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사고 물량을 전산 등록할 수 없도록 해 사용을 차단하는 조처는 23일에야 끝났다는 의미다.

이런 조처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면 22∼23일에 접종받은 42명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조사 과정에서 접종자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실제로 이날 질병청은 105명이 접종받았다고 밝혔으나, 전주시 측은 지역 내 접종자가 179명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전주 외에도 서울, 부산, 전남 등에서 물량이 공급된 만큼 조사 과정에서 접종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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