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콘텐츠 인사이드] 국내 OTT가 넷플릭스와 싸우는 법

김희경 문화부 기자
“결국 이 바닥으로 오는 거야? 될 것 같으니까?”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 ‘개미는 오늘도 뚠뚠’에서 방송인 노홍철은 이런 말을 한다. TV 방송에서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를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 촬영 현장에서 발견하고 한 얘기다. 그의 말은 요즘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해준다. 사람도, 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OTT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카카오M도 지난 1일 카카오TV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장에선 후발주자인 데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있어 카카오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카카오TV 구독자 수는 300만 명을 넘어섰다. 업계 예상을 뛰어넘는 질주다. 카카오TV는 짧은 길이의 ‘쇼트폼(short form) 콘텐츠’를 앞세웠다. 대부분 1분 남짓이고, 길어도 15분 정도다. 이 ‘가벼움’은 뛰어난 접근성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카카오톡에서 카카오TV 메뉴를 눌러 콘텐츠를 보면 된다. 화면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나오는 콘텐츠가 많다. 휴대폰을 가로로 돌리지 않고 원래 사용하던 대로 보면 돼 편리하다.

'얕은 중독'을 노리는 후발주자들

국내 OTT가 글로벌 기업과 ‘싸우는 법’을 조금씩 익히고 있는 듯하다. 더디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벼움’이란 새로운 문화 코드와 참신한 영상 문법을 결합하거나, 특정 장르 작품을 연이어 내놓으며 해당 OTT 브랜드로 키우는 장르화를 시도하고 있다. 힘들지만 언젠가 ‘될 것 같다’는 가능성에 베팅한 토종 OTT. 이들이 시장에 천천히 안착할 수 있다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싹트고 있다.글로벌 OTT가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미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빈틈도 있다. 특히 넷플릭스 작품을 보기 전엔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 무거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강렬함은 마니아들을 양산한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깊은 중독과는 다른, 얕지만 습관적인 중독을 노린 콘텐츠 시장이 분명 존재한다. 이 수요는 그동안 유튜브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위협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10억 명이 가입한 틱톡도 얕은 중독을 활용한 사례다. 틱톡엔 15초 영상만 올리면 돼 이용자가 급증했다. 사람들도 ‘킬링타임’용으로 이를 반복 소비하고 있다.

카카오TV 콘텐츠는 넷플릭스보다는 얕고,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유튜브와 틱톡보다는 완성도가 높다. 길이, 화면만 변한 게 아니다. ‘페이스아이디’는 가수 이효리의 스마트폰 화면을 녹화해 보여준다. 폰 사진, 검색 기록 등이 그대로 나온다. 작사가 김이나의 ‘톡이나 할까?’에는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게스트와 마주 보고 말없이 카카오톡으로 얘기한다. 쉬운데 기존 방송과는 다르고, 가볍지만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새로운 시각 담은 콘텐츠만이 살 길"

왓챠는 재밌는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왓챠는 OTT 업계 최초로 26일 TV 홈쇼핑에서 이용권을 판매했다. 상반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해 ‘3일 무료 이용권’ 5000만 장을 배포했다.

물론 이 정도로는 글로벌 OTT를 뛰어넘을 수없다. 이를 기반으로 언젠가 정면 승부해야 한다.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운영하는 웨이브의 장르화는 그런 면에서 한 발 나아간 시도다. 웨이브는 SF 장르의 콘텐츠를 잇달아 선보였다. 지난 7월 공개한 ‘SF8’엔 환자를 돌보는 인공지능(AI) 간병 로봇,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에서 고가의 항체주사를 맞지 못해 30대에 죽는 사람들 등 독특한 소재가 담겼다. 8월부터는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담은 ‘앨리스’(사진)를 웨이브와 SBS에서 동시 방영하고 있다.

“차별화는 전술도, 혁신적인 신제품 출시도 아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문영미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디퍼런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토종 OTT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글로벌 기업들은 자본력에 기반한 다양한 콘텐츠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 콘텐츠처럼, 국내 OTT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플랫폼에 걸맞은 콘텐츠를 내놓으며 넷플릭스와 싸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