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되자 새 이름으로 귀화한 외국인…법원 "귀화 취소 정당"

가정폭력으로 국내에서 추방당한 외국인이 새로운 신분으로 귀화한 사실이 드러나 귀화가 취소된 뒤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외국인 A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귀화 허가 취소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파키스탄 출신 A씨는 1994년 대한민국에 입국한 뒤 한국인 B씨와 결혼해 슬하에 딸 1명을 두었으나 2년 만에 이혼했다.

혼인 파탄의 이유는 A씨의 폭력적 성향에 있었다.

A씨는 아내와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1999년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후 법무부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A씨를 국내에서 추방하며 5년간의 입국 금지를 명령했다.

그러자 A씨는 파키스탄에서 다른 이름과 생년월일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아 추방된 해 곧바로 재입국했다.

새로운 이름으로 국내 출입을 반복하던 A씨는 2002년 또 다른 한국인 C씨와 결혼했고, 2006년에는 혼인 귀화 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A씨의 '이중생활'은 음주운전으로 2015년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드러났다.

당국이 A씨의 지문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과거 추방당한 파키스탄인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발견한 것이다.

이에 법무부는 A씨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며 귀화 허가를 취소했다. 소송을 제기한 A씨는 "귀화가 허가될 당시의 법에는 귀화 허가 취소 또는 취소 사유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며 "없었던 근거법령이 신설됐다는 이유로 소급적용하는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법무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법무부 장관은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귀하 허가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며, 허가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일정한 제한 하에 이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귀화 허가 취소로 침해되는 원고의 법적 신뢰보다 이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적 요구가 더 크다"고 덧붙였다.

A씨는 "파키스탄에서 적법한 개명 절차를 밟았고 잘못된 출생일을 정정해 새 여권을 발급받아 국내에 입국한 것일 뿐,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귀화한 것이 아니다"라는 항변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귀화 허가가 취소되면 원고로서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해 국내 체류가 곤란하고 종전의 생활 관계가 단절되는 등 상당한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나, 국적취득의 적법성 확보는 국가 질서 유지의 근간인 만큼 이 사건 처분의 공익이 원고의 침익에 비해 훨씬 크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