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바이든이 트럼프 압도…대세론 탄력받나 [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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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후보, 18억6700만 달러 지출해
지난 대선 훌쩍 뛰어넘어
'대법관 인준'이 남은 선거 변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쩐의 전쟁’이다.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답게 누가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릴 때가 많다.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권 교체에 나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바이든 가용 자금, 트럼프보다 많아
미 공영 방송 NPR에 따르면 트럼프와 바이든 두 캠프가 지출한 선거비용은 9월 20일(현지 시간) 기준 18억6700만 달러로, 4년 전 대선 때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들이 쓴 돈을 훨씬 뛰어넘는다. 선거 자금 모금에선 최근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캠프의 보유 현금이 8월 말 기준 4억6600만 달러로, 트럼프 캠프의 3억2500만 달러보다 1억4100만 달러 많다고 양측 캠프를 인용해 보도했다.NYT는 “바이든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등장한 올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보다 보유 현금이 1억8700만 달러 적었다”며 두 캠프의 자금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집권 후부터 재선 캠페인 자금을 모았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올해 4월 초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부터 선거 자금 모금에 속도를 냈다. 이 때문에 초반엔 트럼프 대통령이 자금력에서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이든 후보 측이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양측 캠프가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바이든 후보는 지난 5~7월만 해도 월간 기준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엇비슷한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8월엔 3억6540만 달러를 그러모아 2억1000만 달러에 그친 트럼프 대통령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바이든 후보의 8월 모금액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기록한 종전 최고액(1억9300만 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 정권 교체 열망이 큰 데다 바이든 후보가 8월 초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면서 선거 자금 모금에 탄력이 붙었다.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와 규제 완화로 혜택을 본 월가(미국 금융가)마저 바이든 후보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줬다. NYT는 올 들어 8월 초까지 바이든 후보가 월가에서 받은 후원금은 4400만 달러로 트럼프 대통령(900만 달러)의 다섯 배에 달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후보는 최근 보수 성향의 라스무센 여론 조사에서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리긴 했지만 이 밖의 거의 모든 여론 조사에서 우세를 이어 가고 있다. WSJ와 NBC가 9월 20일 공개한 여론 조사(13~16일, 유권자 1000명)에서도 바이든 후보는 51%의 지지율로 트럼프 대통령(43%)을 8%포인트 앞섰다.
바이든 캠프엔 ‘막강한 후원군’까지 가세했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최근 바이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최대 승부처인 플로리다 주에 최소 1억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플로리다는 올해 대선의 승패를 가를 6개 핵심 경합 주 중 가장 많은 선거인단이 걸린 곳이다.민주당도 상원 선거 자금 모금에서 공화당을 앞섰다. 의회 전문지 더힐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선거 운동 조직이 지난 8월 각각 1900만 달러와 2690만 달러를 모았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에서도 승리를 노리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하원만 장악하고 있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 이후 민주당엔 선거 자금이 더 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액 기부 중심의 민주당 온라인 모금 플랫폼 ‘액트블루(ActBlue)’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9월 18일 이후 28시간 만에 9100만 달러가 모였다고 밝혔다. 9월 19일 하루에만 120만 명 이상이 7060만 달러를 기부해 하루 기준 4200만 달러였던 이전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트럼프, 4년 전엔 돈 적게 쓰고도 당선
액트블루 측은 “진보가 (민주당 출신의 차기 대통령이 자신의 후임을 지명하길 기대했던) 긴즈버그 대법관의 마지막 소원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바이든 캠프는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광고에서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펴고 있다. NYT는 “8월 마지막 한 주 동안 TV 광고에 쓴 돈은 바이든 후보 측이 6550만 달러, 트럼프 대통령 측이 1870만 달러”라고 전했다.
하지만 NPR에 따르면 지금까지 선거전에 쏟아부은 돈(누적 기준)은 트럼프 캠프가 11억3000만 달러로 바이든 캠프(7억3700만 달러)보다 훨씬 많다. 두 캠프의 누적 지출액은 18억6700만 달러로 2016년 대선(10월 하순 기준 약 11억3000만 달러) 때보다 많은 역대 최대 규모다.
물론 자금력이 꼭 대선 승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WSJ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훨씬 적은 선거 자금을 모으고 집행했지만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주류 언론이나 광고가 아니라 트위터를 이용해 끊임없이 화제를 몰고 다녔다. 올해는 소셜 미디어 외에 현직 프리미엄을 ‘비밀 병기’로 활용하고 있다. 9월 17일 경합 주인 위스콘신에서 130억 달러 규모의 농민 지원책을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 판세를 흔들 돌발 변수로는 긴즈버그 대법관 사망 후 후임 대법관 ‘인준 전쟁’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후임 대법관 인준 절차를 서두르며 보수층 결집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21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상원이 11월 대선 전 인준 표결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내가 (대선에서) 이기면 트럼프의 지명은 철회돼야 하며 새 대통령으로서 내가 지명하는 사람이 (후임 대법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하는 것은 후임자 성향에 따라 한국의 대법원 겸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미 연방 대법원의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별세 전 미 대법원은 ‘보수 5 대 진보 4’의 구도였다.
보수 우위이긴 하지만 보수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균형추’ 역할을 하면서 최근 낙태, 성 소수자, 이민 등 현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제동을 거는 진보적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을 보수 성향의 대법관으로 채우면 미 대법원은 ‘보수 6 대 진보 3’의 확실한 보수 우위로 바뀌게 된다. 미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이 구도는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상당 기간 바뀌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민주당이 집권해도 ‘보수 대법원’이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바이든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해리스 상원의원은 지지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트럼프가 오바마 케어(버락 오바마 정부 때 도입된 건강보험)를 뒤집고 이민자 보호를 중단하고 (낙태 권리를 인정한) 판결을 뒤집을 사람을 지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편 투표 확대로 올해 대선 승패를 둘러싼 잡음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 대법관 지명을 서두르는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 대선 승패를 갈랐던 플로리다 주 재검표 논란 당시 연방 대법원이 전면 재검표를 불허하면서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올해는 우편 투표 확대로 경합 주 곳곳에서 재검표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때 연방 대법원이 보수 쪽으로 기울어 있으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대선 전 인준을 강행하면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저지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상원은 총 100석 중 공화당이 53석으로 인준에 필요한 과반을 확보하고 있다. 공화당에서 최대 3명이 이탈해도 상원의장 역할을 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공화당 이탈표가 얼마나 나오느냐가 인준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9월22일 현재 공화당 상원의원 중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과 수전 콜린스 의원이 대선 전 후임 대법관 지명에 공개적으로 반대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내로남불’하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 2016년 2월 보수 성향이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 별세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하자 공화당은 대선이 있는 해에 새 대법관을 지명해선 안 된다며 인준청문회를 거부했다. 그랬던 공화당이 지금은 말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가 9월 20일 공개한 여론 조사를 보면 올해 대선 승자가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을 지명해야 한다는 응답이 62%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23%)보다 많았다.[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297호(2020.09.26 ~ 2020.10.02)에 실린 기사입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