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내가 건강하게 살려고 하는 겨" 청춘봉사단 문옥선씨

세종서 12년째 반찬 나눔…집수리·네일케어·마사지도 섭렵한 전문가
"신경통·관절염 안고 살지만 나누는 마음이 청춘 만들어"
"아휴∼ 일주일 전에 두고 간 포도가 그대로 있네. 식사는 좀 하셨어?"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5일 세종시 조치원읍 행정복지센터 앞 한 컨테이너 건물.
양손에 음식을 든 문옥선(64) 씨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던 어르신의 표정이 금세 환해진다. 이날은 문씨가 단장으로 있는 세종시 청춘봉사단이 밑반찬을 만들어 홀로 사는 노인과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에 나누는 날이다.
보통 2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는데, 곧 명절인 만큼 전이며 과일 등을 들고 단원들이 일주일 만에 찾았다.

방을 지나 부엌으로 들어선 문씨는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남아 있는 음식을 체크하고, 해온 음식을 반찬통에 덜어놓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전이랑 잡채는 방금 한 거니까 조금 있다가 식으면 냉장고에 넣으시고, 물김치는 더 익게끔 여기다 둘게요.

아니 포도는 또 왜 안 드시고 놔뒀대"
문씨의 잔소리가 쏟아지자 할아버지가 같이 온 자원봉사자에게 "저 할멈(문씨)이 건강에 안 좋다며 너무 많이 먹지 말라잖아. 그래서 남긴 거지∼" 하며 장난스레 대꾸한다.

청춘봉사단이 결연하고 10년 넘게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는 터라 찬장에 그릇이 몇 개인지, 청소는 언제 했는지 모두 알 정도로 속사정에 밝다. 문씨는 "저 어르신도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오셨는데 마나님 돌아가시고서 부쩍 힘들어하시더니 바깥출입을 잘 못 하셨다"며 "이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면 너무 뿌듯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상포진을 앓던 어르신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처음 발견한 것도 문씨였다.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119에 전화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치료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떴다. 갑자기 아내를 잃고 나서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는데, 매주 집에 와서 말벗이 되어주는 문씨 덕에 차츰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방문도 못 하고 전화로 안부 묻기를 대신 할 수밖에 없었다.

문씨는 "어르신들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인정이 고프신 분들이 많다"며 "이렇게 직접 찾아봬야 저도 안심이 되는데 그동안은 갈 수 없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문씨가 자원봉사자의 길에 입문한 건 12년 전.
동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던 중 집수리 봉사단장을 알게 됐고, 간간이 봉사에 참여하다가 2011년 퇴직한 이후로는 아예 '전업 봉사 요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지금은 반찬 만들기를 주로 하고 있지만, 집수리, 네일 케어, 방재 활동, 손 마사지까지 배워 이제는 전문 강사로 초빙될 정도로 전문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문씨는 "매니큐어와 손톱 보호제를 바른 뒤 마지막에는 스티커를 붙여드리는데, 어르신들이 이 반짝이를 너무 좋아하신다"며 "정부세종청사 옥상정원에서 네일 케어 행사도 했었는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청춘봉사단은 문씨처럼 주로 50∼70대의 여성 50여명으로 꾸려져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밑반찬을 만들거나 방역 활동을 하는 등 봉사를 해오고 있다.

문씨처럼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이들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베테랑들이다.

정해진 레시피도, 표준 매뉴얼도 없지만 50인분이 넘는 밑반찬을 '감'으로 해낸다.
멸치볶음을 고소하게 잘 만드는 조, 겉절이를 아삭하고 매콤하게 담는 조, 국을 칼칼하게 잘 끓이는 조 등 저마다 전문성을 갖고 요리 경력을 뽐낸다.

단원 대부분 나이가 있는 터라 신경통과 관절염은 기본으로 앓고 있지만, 다시 '청춘'처럼 산다는 기분으로 흥겹게 일하고 있다고 문씨는 전했다.

문씨도 직장 생활을 하는 딸을 위해 손주들을 돌봐주다 보니 앉았다 일어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끙'하고 신음을 낼 정도로 무릎 통증을 안고 산다.

딸은 엄마 건강도 걱정되고, 이런 시국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불안하다며 늘 봉사활동을 만류하는 게 일이다.

문씨는 "봉사를 다녀오고 나면 외손자들 키우는 게 오히려 더 수월해지고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며 "며칠씩 못 나가면 어깨도 딱딱하게 더 굳고 오히려 몸이 찌뿌둥하고 짜증만 난다"고 말했다. 이어 "남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더 밝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