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이글거리던 지난 8월 31일 정오를 막 넘긴 시간 전북 익산의 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사 A씨(61)가 B씨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휘청거렸다. B씨의 주먹 한 방은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버스 기사와 한차례 벌인 실랑이 직후에 날아들었다.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스에 타려고 했으나 기사가 이를 제지하자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사 올 테니 기다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다음 정류장까지 운행 시각을 맞춰야 했던 버스 기사는 B씨를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 이를 본 B씨는 택시를 타고 뒤따라가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 올라탄 뒤 기사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지만, 일부 승객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전국적으로 '마스크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버스 기사에게 욕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등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마스크는 사실상 '생필품'이 된 지 오래다.
한때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서 '금스크'로도 불린 적이 있지만, 마스크 생산공장이 올 초보다 4배 가까이 급증한 요즘엔 가격도 몇백원으로 저렴해지고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다.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지만, 대부분이 착용하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마스크 분쟁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 전주 시민단체들의 내놓은 해법을 눈여겨볼 만하다.
전주 지역 50여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함께 타는 버스 시민연대'는 지난달부터 시민의 안전과 시내버스 기사들의 안전운행을 위해 미처 마스크를 준비하지 못한 탑승객에게 마스크를 제공하는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잊지 마∼스크, 있지 마스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깜박 마스크를 두고 나온 시민들이 운전기사 좌석 뒤편에 마련된 '잊지 마∼스크'를 한 장 사용하고 다음 탑승 때 버스에 마스크를 기부하거나 마스크 비용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 시민연대는 우선 5천개의 '잊지 마∼스크'를 관내 모든 시내버스(408대)에 10장씩 비치했고, 이후에는 시민들의 현물 기부 마스크와 기부금 모금을 통해 마스크가 지속해서 비치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의 자활기업인 '이크린월드'가 100만원을 후원했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기부에 동참하는 등 각계각층의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 승객도 기부함을 발견하곤 여분의 마스크를 기꺼이 넣고 있다.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런 캠페인 덕분인지 다른 지역과 달리 전주에서는 모든 시내버스에 마스크가 비치된 지난달 중순 이후 단 한건의 마스크 시비도 발생하지 않았다.
퍼낼수록 물이 고이는 샘물처럼 '마스크 선순환 구조'가 정착함으로써 크고 작은 다툼을 방지하는 한편 삭막해진 공동체를 복원하는 효과까지 더해지고 있다. "몇백원짜리 마스크 한장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승객이나 버스 기사가 더는 없고, 서로를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시민단체의 바람처럼 '마스크 나눔'이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번져 힘들게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작은 활력소와 위안이 되고 국민의 안전과 생활을 든든히 지켜내는 성공사례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