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블랙홀 존재 증명한 펜로즈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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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발표된 2020년도 노벨물리학상은 영국의 로저 펜로즈, 독일의 라인하르트 겐첼, 미국의 앤드리아 게즈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1931년생인 펜로즈는 1965년 블랙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론으로 증명했고, 겐첼과 게즈는 1990년대에 우리 은하계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관측해 그 존재를 입증했다. 블랙홀은 중력(重力)이 너무 강해서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2017년에는 중력파를 예견하고 관측하는 데 공을 세운 킵 손 등 세 물리학자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중력은 갈릴레오와 뉴턴 등에 의해 가장 먼저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전기와 자기를 통일한 전자기력, 원자핵 내의 약력과 강력 등 세 가지 상호작용이 양자물리학적으로 기술되는 것과 달리 중력에 대한 양자물리학적인 이해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체의 정보가 완전히 소실되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남아있는지에 대해 스티븐 호킹과 킵 손이 내기를 했는데, 그런 논쟁도 중력과 양자물리학의 문제다. 중력을 양자물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초끈(슈퍼스트링)이론과 다양한 양자중력 이론이 논의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성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양자암호통신과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는 세상이 됐음에도, 양자물리학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문제의 핵심에 양자 측정이 있다. 중첩 현상은 파동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여러 가능성이 중첩돼 있다가 측정에 의해 그중 하나만 확률적으로 선택 결정되는 것은 양자물리학 측정과 관련된 미스터리로 여겨진다. 뉴턴 등에 의해 성립된 고전물리학이 결정론적인 인과관계를 드러내 보인 데 비해 양자물리학은 측정에 따른 확률론적인 입장을 보인다. 결정론에 문제가 생기자 철학과 신학에도 자유의지의 존재 등에 대해 새로이 검토할 여지가 생겼다.아인슈타인 자신은 양자물리학의 성립에 크게 기여했지만, 양자 측정의 확률론적인 관점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이 뭔가 부족한 이론이라는 걸 보이기 위해 1935년 양자얽힘에 관한 현상을 제시했다. 멀리 떨어진 두 군데에 걸쳐 있는 양자얽힘 상태에 대해 한쪽을 측정하면 그 즉시 다른 쪽의 측정 결과와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이것은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특수상대성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이후 이와 관련한 실험이 거듭돼, 양자 측정의 결과로 상관관계가 즉시 성립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양자물리학적 예측이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런 한편 양자 측정 결과는 확률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므로, 이 상관관계를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의도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이 특수상대성 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고 있다.펜로즈는 양자 측정이 이뤄질 때 여러 중첩된 가능성 중 하나로 정해지도록 하는 것을 중력의 작용이라고 해 양자 측정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이 중력을 양자화하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양자물리학을 중력화하겠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5각형 모양으로는 평면을 빈틈없이 메워 나갈 수 없다는 상식을 깬 펜로즈 타일을 1974년 소개했다. 이는 2011년 노벨화학상 주제인 ‘준결정’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인 그의 아버지와 함께 소개한 펜로즈 삼각형(일명 불가능한 삼각형)은 다양한 착시 디자인에 여러 가지 변형으로 등장한다.펜로즈가 출간한 책과 논문에 실린 상당수의 그림은 펜로즈 본인이 직접 그렸으며, 필자가 참관했던 한 세미나에서도 펜로즈는 컴퓨터 파일이 아닌 투명 셀로판지에 직접 쓰고 그린 것으로 강연했다. 1989년 출간한 《황제의 새마음》에서 펜로즈는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여러 계산을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다는 양자병렬성과 함께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소개했다.
펜로즈의 넓고 깊은 호기심과 이를 헤쳐나가는 끈기에 경탄하며, 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중력은 갈릴레오와 뉴턴 등에 의해 가장 먼저 이해되기 시작했지만, 전기와 자기를 통일한 전자기력, 원자핵 내의 약력과 강력 등 세 가지 상호작용이 양자물리학적으로 기술되는 것과 달리 중력에 대한 양자물리학적인 이해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체의 정보가 완전히 소실되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남아있는지에 대해 스티븐 호킹과 킵 손이 내기를 했는데, 그런 논쟁도 중력과 양자물리학의 문제다. 중력을 양자물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 초끈(슈퍼스트링)이론과 다양한 양자중력 이론이 논의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성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양자암호통신과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는 세상이 됐음에도, 양자물리학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게 하는 문제의 핵심에 양자 측정이 있다. 중첩 현상은 파동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여러 가능성이 중첩돼 있다가 측정에 의해 그중 하나만 확률적으로 선택 결정되는 것은 양자물리학 측정과 관련된 미스터리로 여겨진다. 뉴턴 등에 의해 성립된 고전물리학이 결정론적인 인과관계를 드러내 보인 데 비해 양자물리학은 측정에 따른 확률론적인 입장을 보인다. 결정론에 문제가 생기자 철학과 신학에도 자유의지의 존재 등에 대해 새로이 검토할 여지가 생겼다.아인슈타인 자신은 양자물리학의 성립에 크게 기여했지만, 양자 측정의 확률론적인 관점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물리학이 뭔가 부족한 이론이라는 걸 보이기 위해 1935년 양자얽힘에 관한 현상을 제시했다. 멀리 떨어진 두 군데에 걸쳐 있는 양자얽힘 상태에 대해 한쪽을 측정하면 그 즉시 다른 쪽의 측정 결과와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이것은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다는 특수상대성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이후 이와 관련한 실험이 거듭돼, 양자 측정의 결과로 상관관계가 즉시 성립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양자물리학적 예측이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런 한편 양자 측정 결과는 확률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므로, 이 상관관계를 이용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의도하는’ 정보를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양자물리학이 특수상대성 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되고 있다.펜로즈는 양자 측정이 이뤄질 때 여러 중첩된 가능성 중 하나로 정해지도록 하는 것을 중력의 작용이라고 해 양자 측정의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이 중력을 양자화하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양자물리학을 중력화하겠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30년 전 양자컴퓨터 가능성에 주목
펜로즈는 수리물리학자로서 우주론 이외에도 수학·과학·철학 등 다양한 소재를 《황제의 새마음》 《마음의 그림자》 《실체에 이르는 길》 등의 책에서 깊게 다뤘다. 현재 알려진 물리학으로는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意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뇌 속에 있는 미세관에서 일어나는 양자물리적 현상이 의식 현상과 관련 있다고 주장해 관련 주류 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분야 연구에 새로운 연구집단을 형성하기도 했다.5각형 모양으로는 평면을 빈틈없이 메워 나갈 수 없다는 상식을 깬 펜로즈 타일을 1974년 소개했다. 이는 2011년 노벨화학상 주제인 ‘준결정’과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인 그의 아버지와 함께 소개한 펜로즈 삼각형(일명 불가능한 삼각형)은 다양한 착시 디자인에 여러 가지 변형으로 등장한다.펜로즈가 출간한 책과 논문에 실린 상당수의 그림은 펜로즈 본인이 직접 그렸으며, 필자가 참관했던 한 세미나에서도 펜로즈는 컴퓨터 파일이 아닌 투명 셀로판지에 직접 쓰고 그린 것으로 강연했다. 1989년 출간한 《황제의 새마음》에서 펜로즈는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여러 계산을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다는 양자병렬성과 함께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소개했다.
펜로즈의 넓고 깊은 호기심과 이를 헤쳐나가는 끈기에 경탄하며, 그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