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 뷰] K-바이오 방역, 1등을 지켜낼 수 있을까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팬데믹)이라는 금세기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런 팬데믹 속에서 뛰어난 진단능력과 방역역량으로 K-바이오의 위상이 심상치 않다. 심상치 않다고 표현한 이유는 이번 기회에 세계 바이오 시장을 석권할 것 같은 긍정적 전망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및 불안한 예감을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얻은 기회
먼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K-바이오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맹위를 떨치게 된 배경을 생각해보자. ‘예측하지 못한 것’과 ‘주어진 기회’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질환이 통제가 불가능한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진행됐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감염의 신속한 진단과 감염자를 격리하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방역시스템이다. 유기적으로 구축된 국가의료시스템, 잘 훈련된 의료진, 위기상황에서 국가정책에 협조하는 높은 민도의 국민, 메르스 사태의 실전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의 방역시스템이 가동돼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확진자를 적은 수로 통제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증폭 진단키트와 항체 진단키트의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던 국내 회사가 코로나19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신속하게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생산해 방역의 첫 단계인 진단을 무사히 마쳤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진단키트는 여러 나라에 공급되며 K-바이오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K-바이오가 진단과 방역이라는 두 영역에서 글로벌 무대로 진출한 쾌거다.높아지는 기업가치, 역풍 맞을 수도

이렇게 전도양양한 K-바이오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이번 일의 계기가 된 전염성 질환의 특징에 있다. 이번 코로나19와 같이 새로운 병원체에 의한 전염병의 발생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K-바이오가 역량을 보여줄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 기회가 주어진, 운이 따른 경우다.

둘째는 경제적 논리다. 진단키트와 치료제 개발, 생산은 인류를 질병의 위험에서 구원하는 공헌과 사명감이 동반되는 의무지만 동시에 막대한 이익 창출이 따르는 경제활동이다. 많은 업체가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진단키트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투자가 이뤄졌다. 또 유행처럼 많은 업체가 진단키트와 치료제, 백신의 개발을 천명했다. 하지만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이미 높아진 기업가치는 투자자의 손실과 함께 기업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 등 신약개발 분야에서는 국내 기업이 선두그룹에 속하지 못했다. 이미 여러 업체 간 경쟁에 따라 진단검사 비용도 초기에 비해 많이 저렴해진 현실을 고려할 때 질병이 통제된 이후에 대한 대비가 시작돼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돼 전염병의 통제가 가능해지면 진단키트와 치료제의 수요는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세계 각국은 또 다른 전염병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할 것이다. 즉 미래엔 K-바이오에 이번과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 K-바이오의 위세를 떨친 방역시스템은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 등 다분히 숫자에 의존해 비교한 면이 있다. 방역시스템의 구성과 운영 성과는 국토의 크기, 인구 수, 국가 혹은 민간 의료보험제도와 보급, 의료진의 규모, 의료수준과 봉사 의지, 국민의 교육수준과 생활패턴 등의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우리나라에 최적화된 방역시스템을 다른 국가에서 벤치마킹을 할 수는 있지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K-바이오의 방역시스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고, K-바이오의 우수성이 과장됐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K-바이오의 태동은 언제부터였을까

필자는 국내 제약회사가 글로벌 제약사와 맺은 조 단위의 혁신 신약의 기술수출이 K-바이오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기초적인 원료의약품 생산과 복제약, 위탁생산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던 국내 제약사가 마치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데뷔에 성공한 K-팝 아이돌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몇 건의 기술수출 반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수많은 전문 인력이 바이오 기업의 연구소에 합류하거나 스스로 바이오 기업을 창업하는 등 신약 개발의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K-바이오의 신약 개발은 K-바이오의 방역과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첫째, 예측은 물론 계획과 기획이 가능하다. 의료계에서의 미충족 요구를 파악하고 시장 규모에 대한 예측이 가능해 처음부터 기획하고 설정한 목표에 맞는 개발을 꾀한다는 것이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둘째, 감염성 질환은 원인균의 일부 유전학적인 변형을 제외하고는 국가마다 발병 건수, 유병률 등 특이한 질병 양상을 보인다. 달리 말하면 전염병에 대한 예방백신이나 치료제는 국가 간에 공통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별도의 임상시험이나 규제가 최소화되기 때문에 먼저 개발에 성공하는 기업의 시장 장악력이 매우 높다. 후발업체의 후보물질이 진입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백신의 성공은 진단키트 및 치료제 시장을 급격히 위축시킬 것이다. 하지만 비감염 질병에 대한 치료제 시장은 다르다. 후발주자도 시장에 진출할 여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대한민국은 국토와 인구, 자원이 매우 한정적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넘보기 힘든 높은 수준의 고급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런 K-바이오의 역량은 기회가 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K-바이오 방역보다 기회와 부가이익을 창출하는 능동적인 K-바이오 신약 개발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필자가 가슴에 담고 있는 여러 금언 중 이사야 피들러 박사가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 첫발을 디딜 때 한 말이 생각난다. “무조건 1등이 돼라. 도전해서 1등이 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도전을 이겨내고 1등을 지켜내는 것은 더 어렵다.” 세계에서 1등을 한 K-바이오 방역이 새겨들을 만한 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