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허덕 美 중고차업체 카바나…시총 1위 비결은 '자산 경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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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운명 뒤바꾼 무형자산미국 중고자동차 시장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규모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적자에 허덕이는 중고차 거래 스타트업 카바나의 시가총액(7일 종가 기준 370억달러)이 지난해 9억달러의 순이익을 낸 업계 1위 카맥스(154억달러)의 두 배를 넘어섰다. 올 들어 카맥스 주가가 7.3% 오르는 데 그친 반면 카바나 주가는 135.7% 급등했다.
카바나 주가 올 135% 급등
'업계 1위' 카맥스 몸값 넘어서
테슬라, SW 앞세워 도요타 추월
넷플릭스 콘텐츠, 디즈니 앞서
코로나 이후 주가 상승 원동력
무형자산이 기업가치 높여
월스트리트저널은 7일(현지시간) 카바나와 카맥스의 기업가치가 역전된 이유를 코로나19로 가속화한 ‘자산 경량화(asset-light)’ 경제에서 찾았다. 자산 경량화란 유지 보수 및 관리에 비용이 드는 유형자산을 줄이는 경영 기법을 뜻한다. 미국 투자은행 에버코어ISI의 마이크 몬타니 애널리스트는 “카바나는 코로나19 시대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한 강력한 플랫폼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온라인에서 고른 중고차를 대형 ‘자동차 자동판매기’에서 비대면으로 가져갈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무형자산이 카바나의 기업가치를 높였다는 분석이다.미국 S&P500 기업들이 보유한 무형자산과 유형자산의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칼라일그룹 분석에 따르면 1975년만 해도 존재감이 미미했던 무형자산은 1995년 유형자산의 두 배가 됐다. 2005년에는 4배, 2018년에는 5배로 커졌다. 그만큼 기업 자산에서 부동산 등 유형자산보다 아이디어, 브랜드, 연구개발(R&D), 콘텐츠, 인적자원 등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코로나19로 디지털 플랫폼, 소프트웨어 등 무형자산의 가치가 더욱 부각되면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줌 등의 주가가 올해 급등했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은 사무실 같은 유형자산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그 결과 무형자산 투자 및 관리가 기업 경영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다른 무형자산을 갖춘 기업들이 코로나19 이후 거둔 성과는 눈부실 정도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핵심 무형자산인 주행 소프트웨어는 R&D 비용이 많이 들지만 설치 비용은 적게 들기 때문에 높은 이익률로 이어질 수 있다. 테슬라의 기업가치(3963억달러)는 각각 일본과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업체 도요타와 폭스바겐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전 세계에서 운영하는 디즈니랜드 등 초대형 유형자산을 두루 갖춘 월트디즈니의 시가총액(2221억달러)은 넷플릭스(2358억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월트디즈니가 넷플릭스와 비슷한 스트리밍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 등을 구축해둔 덕에 그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말 상장을 앞둔 숙박 공유기업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는 호텔체인 메리어트(321억달러) 수준인 300억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할 만한 사업 모델 기준도 바꿔
사업모델이 무형자산 중심으로 바뀌면서 ‘투자할 만한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전통적인 개념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과거에 각광받았던 가치투자자들은 보유하고 있는 유형자산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했다. 당시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을수록 투자 매력이 높은 기업으로 대접받았다.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승차공유, 숙박공유 등 유형자산 보유량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PBR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업이 증시에 줄지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런 현상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또다시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제이슨 토머스 칼라일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PBR이 높은 기업, 즉 보유자산에 비해 주가가 고평가된 기업일수록 최근 10년 동안 증시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상위 10% 고(高)PBR 기업은 평균적으로 연 수익률 18%를 올렸다. 반면 저PBR주, 이른바 저평가된 가치주는 같은 기준으로 연평균 수익률이 5% 미만에 그쳤다.
다만 자산 경량화 경제가 패러다임의 완전한 전환인지, 증시에 낀 거품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말에 불과한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카바나처럼 자산 경량화를 이룬 기업 중 상당수는 여전히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소비자에게 주는 편리함 같은 유형자산의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