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part.5] mRNA 백신으로 암 정복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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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철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mRNA 백신이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mRNA 백신의 탄생은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mRNA 백신이 어떻게 암을 막을 수 있는지 알아본다.
현재진행형인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mRNA 백신의 용도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코로나19 예방백신이다. 다른 백신 플랫폼 기술에 비해 mRNA 백신은 제조공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개발이 용이하다. 이런 유연성 덕분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을 약간 뒤로 돌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의 시점으로 돌아가본다면, mRNA 백신의 가장 유망한 용도는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서 mRNA 백신이 기대를 받고 있을까.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이란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암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정상세포에 돌연변이가 생겨 세포 증식이 제어되지 못하고 과잉 증식하면 암이 생긴다.
원래 우리 몸의 면역반응은 ‘내 세포’에 대해서는 일어나지 않고 ‘남(세균, 바이러스 등)의 세포’에 대해서만 일어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암세포는 면역반응의 표적이 된다. 암세포의 기원은 내 세포이지만 유전자 돌연변이 에 의한 변이 단백질은 더이상 내 단백질이 아니라 남의 단백질로 면역세포에게 인식되기 때문이다.
암세포에 의해 면역반응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항암 면역치료법 개발 연구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항암 면역치료법의 하나로 암 백신 연구도 시작됐다. 보통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질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 목적으로 투여하는 예방백신인 반면, 암 백신의 경우는 이미 암이 발병한 환자에게 치료 목적으로 투여하는 치료백신의 개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암 백신을 개발할 때는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백신 항원으로 어떤 것을 이용할까? 예방백신이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항원으로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암 백신의 경우에는 암 항원을 이용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암세포에 생기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암환자마다 모두 다르게 ‘개인화’돼 일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폐암이라 하더라도 폐암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백신 항원은 없다.
이런 이유로 과거의 암 백신 개발은 돌연변 이 단백질을 백신 항원으로 이용하지 못했 다. 그 대신 돌연변이 없이 암세포에서 과잉 발현하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이용해 암 백 신을 개발했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없는 단 백질을 항원으로 사용하다 보니 면역반응이 그리 강하게 유도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이 2010년 암백신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덴드리온의 전립선암 백신 프로벤지다. 하지만 프로벤지는 고가의 치료비용에 비해 효능이 제한적이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덴드리온은 파산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럼 암환자마다 어떤 돌연변이가 있는지 분석해서 이에 맞춘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을 개발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과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각 암환자 의 암세포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는 일이 너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를 가능의 범주로 가져온 것이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 (NGS)이다. NGS 덕분에 각 암환자의 암세포에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매우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환자 맞춤형 암백신 개발이 더이상 꿈이 아니게 된 것이다.
mRNA를 이용한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
각 암환자의 암세포에 있는 돌연변이 단백질을 ‘신생항원’이라고 한다. 암환자 개개인에게서 신생항원을 발굴한 뒤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을 제조해 환자에게 투약한 연구결과가 2017년 7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두 논문은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근본적인 원리는 비슷하지만 하나의 논문에서는 신생항원을 mRNA 형태로 만들어 투여했고, 다른 하나에서는 펩타이드 형태로 만들어 투여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두 가지 플랫폼, mRNA 백신과 펩타이드 백신이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생항원을 이용한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에서 왜 mRNA 백신이나 펩타이드 백신이 선호되고 있을까.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방백신은 대개 항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하지만 암 백신의 경우 항체 면역반응보다는 암세포를 직접 죽일 수 있는 T세포 면역반응을 유발해야 한다. 그런데 항원을 단백질 형태로 만들어 체내에 투여하면 일반적으로 항체 면역반응은 잘 유발하지만 T세포 면역반응 유도능력은 그리 강하지 않다.
반면 항원 단백질의 유전자를 DNA나 mRNA 형태로 투여하면 T세포 면역반응을 강하게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T세포 항원으로 작용하는 에피토프 부분만을 펩타이드로 만들어 투여해도 T세포 면역반응을 수월하게 유도할 수 있다.
둘째,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은 암환자별로 다른 신생항원을 이용해 제조해야 한다. 한번 잘 만들었다고 여러 환자에게 범용으로 이용 할 수 없다. 이름 그대로 환자마다 맞춤으로 제조해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암을 가 지고 있는 암환자를 위한 치료백신의 개념이다 보니 제조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는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공정이 비교적 간단하고 개발이 용이한 유연한 백신 플랫폼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가장 유리한 백신은 바로 mRNA와 펩타이드 백신이다.
반면 mRNA 백신이나 펩타이드 백신의 가장 큰 단점은 체내에 투여했을 때 분해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mRNA 백신의 경우 우수한 mRNA 전달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다.
현재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을 mRNA 백신 형태 로 개발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회사는 독일 의 바이오엔테크다. 바이오엔테크의 홈페이지에는 각종 암을 대상으로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을 ‘개인화된 신생항원 특이 면역치료’라는 이름의 파이프라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미래 의학의 키워드라고 할 만한 정밀의료의 개념을 가장 멋지게 구현한 아이디어가 바로 환자 맞춤형 암 백신이다. 언제쯤 환자 맞춤형 암백신이 항암 치료의 표준치료법으로 등극하게 될까. 환자 맞춤형 암백신 개발에서 mRNA 백신이 결국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더욱 중요하게는 환자 맞춤형 암 백신으로 인류는 과연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흥미를 자아내는 질문이 많은 분야가 환자 맞춤형 암 백신 개발이다. 신의철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임상 의사가 되지 않고 동대학원에서 미생물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다년간 연구원으로 재직한 뒤 2008년부터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면역학 분야의 석학으로 T세포가 주요 연구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