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투입' 청년 점포 41% 휴폐업…정부 "선별 지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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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폐업 점포 중 65%는 음식점…정부 "사후관리 강화할 것"정부가 전통시장내 청년몰 조성과 청년 상인 입점 사업에 3년간 454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전체 지원 점포 594개 가운데 40%가량인 245개가 휴·폐업 등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사업 경험이나 성공 가능성 등을 엄격히 따져보지 않고 무분별하게 예산을 지원했고, 창업 교육에도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뒤늦게 신규 개점 지원을 축소하고 점포 ‘옥석가리기’에 나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업계 "퍼주기식 지원 청년 나약하게 만들어","교육 강화해야"
'청년일자리+전통시장'살리려던 정부, 신규 점포 줄이기로
◆청년상인 생존율 59%에 불과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지난 8월말 현재 청년몰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54억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통시장내 35개 청년몰을 조성하고 594개 점포를 입점시켰다. 하지만 이 가운데 41%인 245개가 현재 휴·폐업 등으로 문을 닫아 청년상인의 생존율은 59%에 불과했다. 휴·폐업 점포 중 65%인 160개는 음식점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경우 이화여대 앞 스타트업 상점가내 공방, 도·소매업, 서비스업 등 13개 점포가 폐업했다. 부산에선 국제시장내 돈까스, 만두전문점, 커피숍 등 14개 점포, 서면시장내 6개 점포가 폐업했다. 수원 영동시장내 가죽공방, 김밥집, 카레전문점 등 16개 점포를 비롯해 구미 선산봉황시장내 네일아트, 미용실, 분식집 등 13개 점포가 폐업했다. 경주 북부상가시장내 가상현실(VR)체험공간, 곱창, 보쌈집 등 13개 점포와 전남 여수시장내 초밥, 맥주전문점, 떡볶이 음식점 등 11개 점포가 폐업했다. 이밖에 대구 산격종합시장·현풍백년도깨비시장, 대전 중앙메가프라자, 충북 제천중앙시장 등에도 청년 상인들의 폐업이 속출했다.중기부는 작년부터 신규 폐업 발생이 거의 없고, 휴업만 발생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장 청년상인들의 전망은 다르다. 수도권 음식점을 경영하는 한 청년상인은 “신 메뉴 개발을 포기하고 손님도 끊겨 정부 지원만 바라보는 청년상인도 상당하다”며 “현재 폐업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 사실상 폐업한거나 마찬가지인 점포도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고 전통시장도 살리자는 취지에서 전통시장 내 일정 구역에 만 19~39세 청년들의 점포 20곳 이상을 입점시키는 청년몰 조성사업을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전통시장 빈 공간을 청년에게 임대해주고 장사하게 하는 ‘청년상인’사업도 병행해 시행해왔다. 현재 임차료로 3.3㎡당 월 11만원씩 24개월까지 지원하고 있고, 점포 운영 기반 조성에 최대 300만원, 3.3㎡당 100만원 한도의 인테리어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된 상인 키워달라”
하지만 임차료 등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없는 점포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특히 청년 상인 지원 사업이 선발부터 후속 관리까지 졸속으로 운영됐고, 제대로된 상권 분석없이 실적 채우기식으로 진행되면서 휴·폐업이 속출했다는 분석이다. 사업 초기 청년 상인 선발을 각 개별 시장의 청년사업단에 일임하고 신청 서류와 한 차례 면접만으로 뽑은 것도 패단으로 지적되고 있다.한 전통시장 관계자는 “사업가로서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이 사업에 뛰어들어야하는데, 많은 청년들이 단순히 요리실력이나 창의성만으로 정부 지원을 쉽게 받아 입점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다수 청년상인들이 어려움을 닥쳤을 때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문을 닫았다”며 “정부가 1000명의 청년 상인을 만들기보다 한 명이라도 제대로된 상인을 키우려고 정책을 펼쳤다면 이렇게까지 폐업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청년 상인 선발 기준을 강화하고 교육도 철저히 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근재 한국외식업중앙회 종로구지회장은 “관련 사업이나 현장 경험이 없고, 차별화된 메뉴가 없는 청년들도 상당수였다”며 ”갚을 필요도 없는 자금을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 역시 청년을 나약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기부 “공개오디션 방식 도입해 심사 강화”
중기부는 올해부터 신규 점포 개설 지원은 가급적 지양하고 청년 상인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올해 청년몰과 청년상인 지원 예산은 135억원으로 작년(169억원)보다 20%삭감했다. 올해 청년몰은 4개만 조성하고 점포 입점은 70개만 지원하기로 했다. 다음달 개장할 예정이다. 작년 실적(청년몰 9개 조성, 135개 점포 입점 지원)의 절반 수준이다.특히 최근 청년 상인에 공개오디션 방식을 도입해 심층면접, 교육, 실전평가 등 서바이벌 방식으로 교육·평가를 거친 최종 합격자에게만 청년몰 입점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또 청년몰 신규 선정 시 핵심상권, 신흥상권 위주로 상권등급, 유동인구, 인프라 등 강화된 기준에 따라 선정하고 실패율이 높은 단순생계형 업종은 지양하고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중심인 전문몰 형태의 ’혁신형 청년몰‘을 조성하기로 했다. 예컨대 봉제공장이 많은 시장에 신생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패션몰이나 반려동물에 특화된 펫몰 등이 그 사례다. 유명셰프가 청년몰에 적합한 조리법(레시피)를 개발해 청년상인에게 기술이전 후 개점 및 점포 경영을 지도하는 제도도 운영하기로 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