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열병식으로 억제력 강화 의지 재확인…내부 결집도 집중

주민들에 고뇌와 어려움 공유하며 지지 노려…미 대선 이후 남북관계에 긍정 전망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통해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무한신뢰를 표시하며 결속을 다지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자위적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을 향해 체제 수호를 최우선에 둘 것이며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가 없는 한 핵무기를 포함한 자위적 억제력을 지속해서 강화해나갈 입장을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선제적 대북 군사적 공격을 염두에 둔 듯 "5년 전과 달리 군사력 현대성 많이 변했다"라거나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단한 갱신 목표들을 점령해나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실제 열병식을 통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길이와 직경이 굵어지고 사거리가 확장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극성-4형'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한판 이스칸데르와 초대형방사포 등 하노이 노딜 이후 개발해온 최첨단 군사장비들을 대거 선보였다. 미 대선에서 트럼프 공화당 행정부가 재집권하든,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서든 미국이 대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는 한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아직 시험발사를 하지 않은 신형 ICBM과 신형 SLBM을 공개한 것은 대선 이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맞춰 노선을 정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고 '핵'을 적시하지도 않았으며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하기 위한 공격용이 아니라 오로지 체제 수호를 위한 수비용임을 거듭 피력했다. 이번 열병식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며 변함없는 대미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도 수위를 조절한 만큼 미국 대선 이전에 한반도 정세를 악화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극단적 도발행위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김 위원장은 이번 열병식에서 이례적으로 남측에 유화적인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측 정부를 외면해온 김 위원장이 직접 공개적으로 긍정적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발언을 그대로 해석해보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측에 등을 돌리고 탈북민 단체의 전단 살포를 이유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가 하면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원을 외면했던 그간의 북한 태도를 보면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주고받고 남측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당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통해 직접 사과를 했지만, 이번 열병식 발언은 김 위원장의 육성으로 발신한 메시지라는 점에서 한 발 더 나간 유화 메시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미 대선이 끝나는 대로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정세 추이 등을 지켜보면서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푸는 데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8차 당대회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가 나올 것 예고하고 있다"며 "분수령이 미 대선이 되겠지만 누가 당선되든 관계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신뢰 속에서 남한 정부의 중재자 역할에 기대하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이처럼 대외적으로 굳건한 체제 수호 의지를 과시하면서도 내부 주민들을 향해서는 최대한 낮은 자세를 보이고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연설 중에 울먹거리고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기도 하는 등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사실 연초부터 세계적인 보건위기가 도래하고 주변 상황도 좋지 않아 고민도, 두려움도 컸다"며 최고지도자로서의 고뇌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심지어 "제가 전체 인민 신임 속에 이 나라를 이끄는 중책에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우리 인민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민들의 어려운 삶을 최고지도자인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화려한 언사나 섣부른 희망을 불어넣기보다는 어려운 민생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전 주민에게 밝힌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열병식은 미국을 향한 대미 압박 메시지도 있지만, 오히려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내부 결속에 중점을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집권 이후 최악의 어려움에 부닥친 김 위원장이 최고지도자와 주민의 간극을 좁히고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지난한 삶에 지친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