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슨모빌, 美 최대 에너지기업 자리 '위태'

셰브런에 한때 시총 1위 내줘

코로나·저유가 위기에 '엇갈린 행보'
엑슨모빌, 한발 늦게 감원나서
셰브런, 선제적 구조조정 단행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 최대 에너지기업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10여 년 전 세계 시가총액 최대 기업에도 올랐던 엑슨모빌은 이젠 미국 업계 내 최대 기업 타이틀을 라이벌 셰브런에 뺏길 처지에 몰렸다. 엑슨모빌의 시총은 최근 수년간 에너지 트렌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에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기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엑슨모빌 시총은 1468억달러(약 169조원)를 기록했다. 셰브런 시총은 1424억달러(약 164조원)다. 7일엔 셰브런이 엑슨모빌 시총을 4억여달러(약 4500억원) 차이로 추월했다.
셰브런 주가는 ‘코로나19 저점’ 이후 36.4% 뛰었다. 반면 엑슨모빌은 10.4% 회복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안에 셰브런이 미국 에너지기업 시총 1위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많다. 엑슨모빌이 지난 9월부터 다우지수에서 퇴출된 것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기업이 지수 구성 종목에서 제외되면 지수 추종펀드의 패시브 자금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셰브런은 다우지수에 포함돼 있다.

위기 대응 속도가 희비 갈라

엑슨모빌과 셰브런은 19세기 말 출범한 스탠더드오일에서 갈라져 나왔다. 사업 내용도 비슷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두 회사는 희비가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시장 변화 대응 속도, 중장기 기업 전략, 평소 재무관리 등이 서로 딴판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선을 횡보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간 ‘유가 전쟁’이 겹친 영향이다. 이 시기 셰브런은 에너지 대기업 중 처음으로 상당한 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생산활동 변동에 맞춰 직원 10~15%를 감원하는 조직개편안도 내놨다. 반면 엑슨모빌은 반응이 늦었다. 조직개편 계획이 없다고 수개월간 강조했다. 지난달이 돼서야 현금흐름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감원에 들어갔다.

중장기 전략도 차이

중장기 기업 전략에서도 차이가 났다. 최근 에너지업계 주요 트렌드인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5일 자체 입수한 엑슨모빌 내부 문서를 인용해 올해 초 엑슨모빌이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5년까지 크게 늘릴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작년부터 주요 에너지기업이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을 의식해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것과 대비된다. 셰브런과 로열더치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등은 친환경 대체에너지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다. 에너지 트렌드 변화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엑슨모빌은 이전에도 업계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헛발질’을 한 전례가 있다. 2010년대 미국 에너지업계에서 ‘셰일혁명’이 본격화할 때 전통 시추법을 통한 석유 생산을 고집하며 기존 석유사업 확장에 열을 올렸다.

셰브런은 ‘저비용 고효율’

엑슨모빌이 그간 공격적으로 늘린 석유 생산 투자도 독이 됐다. 엑슨모빌은 미국을 비롯해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지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대규모 초기 투자를 이미 시작해 중간에 발을 빼기도 어려워졌다. 10년 전 ‘제로’였던 부채는 500억달러로 불어났다. 영업활동에 필요한 현금 부족분은 내년까지 48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싱크탱크 카본트래커의 앤드루 그랜트 석유·가스·광업부문장은 “엑슨모빌은 화석연료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 것이라고 확신하고 지난 10년간 관련 자산 매입과 투자를 반복하다가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지적했다.반면 셰브런은 ‘저비용 고효율’ 전략을 쓰고 있다. 작년까지 에너지업계에서 여러 인수합병(M&A)이 일어났지만 과열 투자를 자제했다. 이를 통해 아낀 돈으로 코로나19 충격을 견뎠다. 7월엔 텍사스 기반 석유기업 노블에너지를 50억달러에 인수해 세계 곳곳에서 신규 유전사업을 확보했다. 블룸버그는 “셰브런은 ‘빅 오일’ 기업 중 가장 재무가 탄탄한 기업으로 부상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싼값에 자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