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뉴스] WHO 기준 맞춘 세계 첫 이종장기 이식 임상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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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한국에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2000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약 3만8000명에 달한다. 이식 대기 중에 사망하는 환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선 매일 20명이 이식 대기 중에 사망했다.
한국에선 이식 장기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외국보다 더 심각하다. 성인병의 증가, 고령화, 유교문화, 출산율 감소 등이 이유다. 외국에서 장기 이식을 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국보다 의료기술이 낮은 나라가 대부분이어서 많은 의료사고와 후유증이 발생하고 있다.타인의 장기 이식이 어렵다면 대체 장기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기술에선 줄기세포 분화를 통한 장기 확보, 생체조직공학을 이용한 조직재생, 동물의 장기를 사용하는 이종장기 등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력만 뒷받침된다면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로 장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한다. 면역반응 등의 문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전한 장기의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대체 장기로 상용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3D 바이오프린팅과 같은 생체조직공학적 방법을 이용한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사람의 심장조직과 젖꼭지, 뼈 등을 생산하는 방법 등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장기를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까지는 올라오지 못했다.성공률 높은 돼지 장기 이식
다른 종의 동물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 장기가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이식 후 부전된 기능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종장기 이식은 19세기부터 시작됐다. 동물의 피부를 사람에게 이식한 것이 시작이었다. 털이 없는 개구리의 피부 등이 사용됐는데 이식된 피부는 며칠간궤양 부위를 보호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생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최초의 이종장기 이식은 1963년 미국에서 이뤄졌다. 당시엔 투석기가 없어 신부전 환자를 살리는 방법은 신장이식밖에 없었다. 침팬지 신장을 6명에게 이식했는데 그중 한 명은 9개월간 생존했다.이후 간이식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마스 스타즐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는 원숭이 신장을, 외과의사인 제임스 하디 박사는 침팬지의 심장을 이식했다. 하지만 모두 오랫동안 생존하진 못했다. 초기엔 사람과 유사한 원숭이나 침팬지의 장기를 사용했다. 그러나 영장류는 번식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옮길 위험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동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결국 이종장기 제공 대상에서 제외됐다.
돼지는 장기 이식에 많은 장점이 있다. 미니돼지의 경우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장기를 갖고 있다. 생리적으로 유사점도 많다. 어미 한 마리가 연간 20마리 이상의 새끼돼지를 생산할 수 있어 대량공급이 가능하다. 또 간염 바이러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등 치명적인 감염원을 피할 수 있다.지난 8월 IND 신청 완료이종장기를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하기 위해선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면역거부반응, 인수공통감염병, 생명윤리, 법 제도 등이다. 현재 돼지 장기 이식은 국내에선 서울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이 가장 앞서 있다. 이미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장기이식원 권고 기준을 충족시킨 미니돼지를 생산하고 있다.
이종장기 이식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영장류 전임상 시험 시설도 갖췄다. 2013년부터 종 이식의 임상 적용을 위해 미니돼지를 활용한 영장류 전임상 및 임상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로 난치병인 당뇨병(제1형)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이종 췌도 이식 분야와 이종 각막 이식 분야에서 성과를 거뒀다.
췌도는 이자에 있는 내분비세포 조직이다. 인슐린을 합성해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제1형 당뇨병은 인슐린 분비가 정상적으로 생산되지 않아 발생한다. 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돼지 췌도를 이식받은 원숭이 6마리 중 4마리 이상이 6개월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해야 한다. 또는 인슐린 주사량을 절반 이하로 줄인 상태에서 비슷한 혈당을 유지하면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넘어서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 가능하단 얘기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 5마리에 돼지 췌도를 이식한 뒤 6개월 이상 정상혈당을 유지했다. 이 중 1마리는 약 1000일(2년 10개월)간 정상혈당을 유지했다. 이종 각막 이식은 영장류 전임상 시험에서 국제가이드라인 기준을 충족했다. 또 세계 최장 생존기록을 달성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이종 이식의 임상 진입을 앞당긴 획기적인 결과라는 내용으로 이식학계 최고권위지인 <아메리칸 저널 오브 트랜스플랜테이션(American journal of transplantation)> 등에 소개됐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은 제넨바이오, 가천대 길병원 등과 함께 무균돼지의 췌도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계획신청서(IND)를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냈다. 이종 각막 이식 임상에 대해서도 지난 7월 IND 신청을 했다.
국제 기준에 따른 첫 임상
이종장기 이식은 인공장기 및 줄기세포 분화 기술을 이용한 장기 이식에 비해 빠르게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의 이번 임상시험 추진은 국제 기준에 맞춘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다. 중국 등에서 돼지 췌도 이식 임상시험이 이뤄진 적은 있으나 WHO와 세계이종이식학회에서 권고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시킨 임상시험은 아니었다.
각막 이식 역시 탈세포 혹은 부분층 각막 이종 이식이 시도된 적은 있지만 국제 기준을 충족시킨 임상은 없었다. 전층 각막 이식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의 임상시험이 세계 최초다.제넨바이오, 서울대와 공동연구
한국 바이오기업 중에선 제넨바이오가 가장 적극적이다.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과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IND도 가천대 길병원 등과 함께 신청했다. 임상시험계획이 식약처 승인을 받게 되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울대 무균미니돼지를 사용해 임상을 한다. 제넨바이오는 이종 췌도세포의 분리 등 임상에 참여한다. 또 해당 이식 기술에 대한 제품화도 담당한다.
제넨바이오는 지난해 7월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참여기업으로 협약을 맺고 국책연구사업인 이종장기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길병원 가천의생명융합연구원과 공동연구협약을 체결한 뒤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제넨바이오는 신속한 임상이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길병원에 이종 췌도세포 치료제 제조소를 구축했다.
돼지 췌도 임상은 제1형 당뇨병 환자 2명을 대상으로 무균돼지의 이종 췌도를 이식한 뒤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장기 이식 후 2년간 추적관찰을 하며 이상 반응 및 부작용에 대한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임상시험책임자로는 한국당뇨협회 회장인 김광원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가 선정됐다.
제넨바이오는 유전자 편집기술을 활용해 이종 이식 거부반응을 최소화한 형질전환돼지 관련 이종 이식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이번 임상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경기도 평택시에 약 6600㎡ 규모로 조성한 연구개발시설에서 파생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제넨바이오는 이종장기의 원료에서부터 이식기법 개발과 신약, 이식 전문병원 설립까지 추진한다는 청사진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동물 조직 및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의 면역반응을 제대로 억제하는 게 필수과제다. 현재 장기이식 후 면역억제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칼시뉴린 억제제는 효과가 뛰어나지만 신장 독성과 악성 종양 등 부작용이 발생해 생존율이 저하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해 1대 주주인 제넥신의 후보물질 ‘GX-P1’과 ‘BSF-110’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제넨바이오는 이들 후보물질을 통해 이종장기 이식 분야는 물론 기존 동종이식에서 사용되고 있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차세대 면역억제제 신약개발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이다.박정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시카고대, 샌프란시스코주립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내고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면역학회 회장, 세계이종이식학회 이사를 역임하고 한국실험동물학회 부회장과 대한이식학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면역 관용이주 연구 분야이며 현재 돼지 췌도를 이용한 이종췌도 이식의 임상 적용을 목표로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