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업체 점거 파업도 적법하다는 대법 판결의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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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로는 최초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원청업체를 점거하고 파업을 벌여도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최초로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3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의 원청업체를 점거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근로자들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요구 및 파업이 줄이을 우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도급인(원청업체)은 수급인(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사업장을 근로 장소로 제공했다”며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 행위로 인해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해야 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한국수자원공사(원청업체)에 청소·시설관리 용역을 제공하기로 계약한 서현 및 포시즌환경 소속 근로자들은 이들 회사와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2012년 6월 파업에 들어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이들 근로자들은 파업 도중에 원청업체인 수자원공사를 점거했다.
노조원들은 확성기 시위를 벌이고 수자원공사 건물에 쓰레기를 투척하기도 해 업무방해, 퇴거불응 등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2심(대전지법 형사합의부)에서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무죄를 선고했다.
노조원들의 사업장 점거 파업은 외국에서는 불법이지만 한국에선 중요 생산 시설만 아니면 허용돼 왔다. 이번 판결로 국내 기업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사업장 점거 파업까지 용인해줘야 한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앞으로 법률상 제3자인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파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사내하청 노조들이 연대해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낸 사례에서 확인된다.
지난 5월 민주노총 소속의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지부로 조직돼 있는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조들이 각각의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포스코, 현대중공업,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등 9개사를 상대로 조정신청을 냈다. 이 사건에서 중노위는 법적인 교섭 의무가 없음에도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하청업체와 공동 노력하라고 권고해 원칙은 지켰지만 앞으로 적지않은 파장을 예고 했다.
내년에도 원청업체를 상대로 한 사내하청 노조들의 단체교섭 요구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대법원 판결 법리가 중앙노동위원회의 향후 결정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