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위즈디엠씨 "100년 후에도 임팩트 주는 음악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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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힙합 차트에서 입소문 타며 상위권…최근 유니버설 레이블과 계약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말은 '포 어 미닛'(For a minute)같은 행복한 곡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춤을 추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내 방에서 만든 작은 곡이 멀리까지 전파되면 이미 그 자체의 생명이 생긴 것이고, 저는 그걸 지켜보며 전체 여정의 일부가 되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독일과 캐나다에서 생활한 21세 신인 뮤지션 위즈 디 엠씨(WizTheMc). 그가 올해 6월 내놓은 싱글 '포 어 미닛'은 멀리 한국에서도 귀 밝은 리스너들을 잡아끌었다.
청량하고 트렌디한 사운드에 가볍게 얹힌 그의 랩은 2분가량의 짧은 곡임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잠깐 놀러와 사랑을 보여줄게'라고 하며 "놀리듯 다가가는 장난기가 가득한 곡"이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히트한 것은 물론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도 해외 랩·힙합 차트 9위까지 오르는 등 입소문을 탔다.
캐나다 토론토에 머무는 위즈 디 엠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00만, 200만 같은 숫자는 우리의 뇌가 그 크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내 곡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숫자를 접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어느 지점에 내가 창작자로서 곡을 만들었을 뿐, 곡은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힙합이나 팝 등 어느 경계에 갇히지 않는 유동적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는 위즈 디 엠씨는 2016년부터 여러 믹스테이프와 EP(미니앨범)을 발매해오다 올해 유니버설뮤직 산하 유통 레이블 '텐 사우전드 프로젝트'(Ten Thousand Projects)와 계약했다.
'포 어 미닛'은 레이블과 계약하고 처음 발표한 싱글이다. "'포 어 미닛'은 코로나 19로 도시 봉쇄가 이루어지고 첫 1∼2주 안에 쓴 곡입니다.
록다운 소식을 듣고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당시 인디 뮤지션이었던 제게는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었죠."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2년 뒤 독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음악 활동을 했다.
"투 체인스(2 Chainz), 릴 웨인(Lil Wayne), 타이가(Tyga) 등을 접하고 빠져들게 됐고 한번 빠져들고 난 후로는 매일 집착처럼 랩을 했다"는 그는 20∼3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면서도 '맞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실력은 조금씩 좋아지며 프로 뮤지션들에게서 점점 협업 제의도 들어오기 시작했죠. 하룻밤 새에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4∼5년간의 준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
여러 나라를 옮기며 생활해온 위즈 디 엠씨는 "'사이'에 놓여있는 삶은 분명 내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사랑에 빠졌을 때 둘 중 하나가 멀리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고, 그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테마가 됐다"며 "한 곳에서 나고 자라고 사랑에 빠져 안정된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상황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뮤지션으로서 한편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퀸과 비틀스처럼 일종의 바이브를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며 자신은 "음악의 모든 장르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첫 구절은 제가 처음 기억하고 따라 부른 노래 가사였어요.
제가 지향하는 음악은 100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가진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모두를 춤추게 하는 퀸의 음악처럼."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독일과 캐나다에서 생활한 21세 신인 뮤지션 위즈 디 엠씨(WizTheMc). 그가 올해 6월 내놓은 싱글 '포 어 미닛'은 멀리 한국에서도 귀 밝은 리스너들을 잡아끌었다.
청량하고 트렌디한 사운드에 가볍게 얹힌 그의 랩은 2분가량의 짧은 곡임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잠깐 놀러와 사랑을 보여줄게'라고 하며 "놀리듯 다가가는 장난기가 가득한 곡"이다.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히트한 것은 물론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서도 해외 랩·힙합 차트 9위까지 오르는 등 입소문을 탔다.
캐나다 토론토에 머무는 위즈 디 엠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100만, 200만 같은 숫자는 우리의 뇌가 그 크기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내 곡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숫자를 접할 때도 비슷한 마음"이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어느 지점에 내가 창작자로서 곡을 만들었을 뿐, 곡은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힙합이나 팝 등 어느 경계에 갇히지 않는 유동적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는 위즈 디 엠씨는 2016년부터 여러 믹스테이프와 EP(미니앨범)을 발매해오다 올해 유니버설뮤직 산하 유통 레이블 '텐 사우전드 프로젝트'(Ten Thousand Projects)와 계약했다.
'포 어 미닛'은 레이블과 계약하고 처음 발표한 싱글이다. "'포 어 미닛'은 코로나 19로 도시 봉쇄가 이루어지고 첫 1∼2주 안에 쓴 곡입니다.
록다운 소식을 듣고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당시 인디 뮤지션이었던 제게는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었죠."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태어나 2년 뒤 독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캐나다 토론토로 건너가 음악 활동을 했다.
"투 체인스(2 Chainz), 릴 웨인(Lil Wayne), 타이가(Tyga) 등을 접하고 빠져들게 됐고 한번 빠져들고 난 후로는 매일 집착처럼 랩을 했다"는 그는 20∼3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면서도 '맞는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실력은 조금씩 좋아지며 프로 뮤지션들에게서 점점 협업 제의도 들어오기 시작했죠. 하룻밤 새에 세상이 바뀐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4∼5년간의 준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
여러 나라를 옮기며 생활해온 위즈 디 엠씨는 "'사이'에 놓여있는 삶은 분명 내 음악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사랑에 빠졌을 때 둘 중 하나가 멀리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고, 그것이 나에게는 일종의 테마가 됐다"며 "한 곳에서 나고 자라고 사랑에 빠져 안정된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상황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뮤지션으로서 한편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퀸과 비틀스처럼 일종의 바이브를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며 자신은 "음악의 모든 장르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퀸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첫 구절은 제가 처음 기억하고 따라 부른 노래 가사였어요.
제가 지향하는 음악은 100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가진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모두를 춤추게 하는 퀸의 음악처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