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전업주부로 평생 헌신했는데 이제 와 졸혼하자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갑자기 내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져. 여보 우리도 졸혼 하자. 내가 돈 벌어오는 기계도 아니고 이제는 내가 번 돈 내 마음대로 쓰며 살고 싶어. 이 집도 내가 번 돈 한 푼 두 푼 모아서 산 거니까 당신이 그만 집에서 나가줘."

결혼한 지 20년. 갑작스럽게 듣게 된 남편의 졸혼(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 생활을 한다는 의미) 선언에 황당해 하는 주부의 사연이다.

두 자녀를 둔 40대 주부 A 씨는 "남편이 이제 마음대로 살고 싶다며 졸혼 하자고 했다"면서 "내가 놀고먹은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편이 '너도 나가서 제발 돈 한 번 벌어봐.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며 절 편하게 벌어온 돈만 쓴 사람 취급했다"고 하소연했다. A 씨가 전업주부가 된 것은 첫아이 임신하면서부터다. 임신으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아이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될 때까지 육아를 도맡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암 투병하는 6년간 간호를 했으며 시어머니가 수술을 하셨을 때에도 집에서 모시며 수발을 들기도 했다.

A 씨는 "남편한테 당신도 내가 했던 고생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병수발들 아버님도 안 계시고 아이들도 다 커서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면서 "애들 밤 잠 안 잘 때 혼자 어르고 달래며 힘든 시절 다 보냈는데 전 남편한테 뭘 해봐야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오히려 밖에 나가 집안일 신경 안 쓰고 돈만 버는 남편이 부러웠는데 이제 와서 저더러 나가서 혼자 벌어먹고 살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나"라고 물었다. 이 같은 황당한 사연과 관련해 이혼전문 이인철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졸혼과 이혼은 어떻게 다를까요

요즘 졸혼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혼을 하고 싶지만 이혼을 하지 못하는 부부가 졸혼 하는 경우도 있고, 이혼까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삶을 살고 싶은 부부가 졸혼 하고 싶은 사례도 있고 이혼소송 도중 조정으로 졸혼을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졸혼은 이혼을 하지 않고 부부가 합의하에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혼은 법적으로 완전히 서류 정리가 되어 남남이 되는 것인데 반해 졸혼은 서류상으로 아직 법적으로 혼인관계는 유지하면서 각자 사는 것이 다릅니다. 별거와 다른 점은 별거는 통상 부부 사이가 나빠져서 하는 것임에 비해 졸혼은 일반적으로 부부가 사이가 아주 나쁘지는 않고 애정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졸혼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졸혼은 법적인 개념이 아니므로 특별한 요건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방이 졸혼을 원한다고 바로 졸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례처럼 갑자기 남편이 졸혼을 요구해도 아내가 거부하면 졸혼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일방적으로 남편이 졸혼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다면 그것은 일방적인 가출이 되고 장기간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일방적인 별거가 되는 것이지 졸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졸혼은 부부가 합의하에 졸혼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졸혼 할 때 주의점이 있습니다. 재산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민법상 부부별산제로 규정되어 있어서 부부가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의 단독 재산입니다. 명의자가 그 재산을 단독으로 처분하거나 대출을 받아서 사용해도 다른 배우자가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현행법상 재산이 없는 일방 배우자가 재산이 있는 배우자에게 재산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혼을 해야만 상대방 배우자 명의로 된 재산에 대해서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책주의라서 이혼 사유가 까다롭고 이혼소송도 1년~3년 정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더욱이 이혼이 되지 않으면 재산이 없는 배우자는 재산분할을 하나도 받을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이혼을 할 경우에는 각자의 기여도를 인정하여 재산분할을 받게 되는데, 이혼이 되지 않고 별거나 졸혼을 해서 서류상 혼인이 유지되면 법적으로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개정해서 이혼을 하지 않고 별거나 졸혼의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는 재산분할을 인정하는 법제 도입이 필요합니다.

졸혼 후 사생활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나요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졸혼 하는 것인데 각자의 취미활동, 여가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큰 다툼은 없겠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부부가 졸혼 후에도 왕래를 할 것인지, 졸혼 하면서 이성 친구를 만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심지어는 다른 이성과 교제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미리 동의가 되지 않는 경우 나중에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졸혼 할 경우 법적으로 미리 합의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각자의 사생활과 행동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기재를 하는 것입니다.

졸혼을 한다 해도 법적으로 이혼을 한건 아니기 때문에 합의서를 써서 각자 생활 일체 간섭하지 말자 해놓고 나중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배우자가 다른 이성을 만나는 것을 문제 삼고 이혼소송을 제기한다거나 하면 어떻게 될까요.

합의서에 구체적으로 기재하면 나중에 번복은 어렵고 이혼소송은 제기할 수 있으나 위자료 청구는 어렵고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졸혼 시 재산에 대한 합의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 명의의 집에 대하여 지분이나 금전으로 증여를 받는 방법입니다. 다만 이 경우 증여세의 부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혼하면서 부부간에 재산분할로 재산이 이전되면 양도세나 증여세 등 세금 부담이 거의 없지만 별거나 졸혼 하면서 재산을 이전할 경우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을 할 경우 양도세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데 이혼하지 않고 혼인을 유지하면서 별거나 졸혼 시 부부간 재산을 증여하면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반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가 생활비 문제입니다. 특히 재산이 없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배우자의 경우 상대방에게 정상적인 혼인생활처럼 생활비를 받을 것인지 받는다면 얼마의 생활비를 언제까지 받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합의를 해야 합니다.

전업주부로 평생 살아온 A를 위해 구체적 조언을 드리자면

미리 거주할 집을 미리 재산분할 명목으로 받는 것이 좋고 일정 액수의 생활비도 졸혼 기간이 종료되는 기간까지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합의는 구두로 합의를 받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반드시 서면으로 남겨야 합니다. 공증을 받는 것이 확실하기는 하지만 번거로운 경우 서면을 제대로 작성하면 굳이 공증까지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때 반드시 졸혼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래 이인철 변호사가 제시하는 합의서 양식을 참고하세요)
이인철 변호사가 제안한 졸혼 합의서 예시문
졸혼을 고민한다는 것은 그동안 결혼생활이 힘들거나 지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혼이나 졸혼도 결국을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졸혼을 선택한다고 무조건 행복이 찾아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외롭고 힘들 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심사숙고한 후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도움말=이인철 법무법인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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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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