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년 조정래 "내세에 관한 이야기로 장편소설 인생 마감"

태백산맥·아리랑·한강 개정판 출간…독자와 대화 담은 에세이집도 펴내
"1인칭 소설 쓰면 '불구의 작가'…정치적인 노벨문학상에 신경쓰지 않는 게 좋아"

"'한강' 이후에 가짓수로 7가지, 권수로는 18권의 책을 썼습니다. '천년의 질문'이 현실을 토대로 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편 두 개 정도는 우리 현실 문제를 떠나 인간의 본질 문제를 토대로 쓰려고 해요.

그걸 쓰고 나서는, 단편과 결별한 게 40년 됐는데, 단편 미학을 문학적으로 완성하고자 단편을 쓰려고 합니다. "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조정래(77)가 밝힌 향후 계획이다.

12일 서울 중구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희수의 노작가이지만 창작열만큼은 '문학청년'에 뒤지지 않는다. 조정래는 이어 "인간 본질에 대한 문제를 다룬 것은 세 권 정도로 2년 후에 책이 나올 것 같다"면서 "3년 후에는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내세에 관한 이야기를 써서 장편소설 인생을 마감하려 한다.

그때가 아마 (등단) 55주년쯤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말이 '초과달성'이었다면서 "그 치열성을 사랑한다. 지금처럼 건강 상태가 유지된다며 단편을 한 50편쯤 쓰고 싶고, 명상적 수필을 한 대여섯 권 쓰고 인생의 문을 닫을까 한다"고 말했다.

"30대부터 소망은 글을 쓰다가 책상 위에서 엎드려 죽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마지막까지 글 쓰다 죽는 것만큼 아름다운 작가의 삶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조정래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해 스테디셀러이자 대표작인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개정판을 도서출판 해냄에서 출간했다.

'퇴고' 수준으로 원고를 다시 교정하면서 일종의 최종 '정본'(定本)을 스스로 완성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일부 고치고 다듬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이들 '대하소설 삼총사'를 처음으로 읽게 됐다는 그의 고백이 눈에 띈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려면 기존에 썼던 작품을 완전히 잊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기존에 썼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고의로 잊고 싶어했던 효과가 대단히 크다는 걸 느꼈다.

30년 세월과 함께 읽어보니 새로운 게 너무 많았다.

'내가 이렇게 썼었나? 내가 왜 이렇게 썼지?' 하는 두 가지 교차하는 감정 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갔죠."
그는 또 독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의 대화형 에세이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해냄)도 펴냈다.

조정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관련해선 "탐욕이 우리 인류를 망치는 좋은 증거가 코로나19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인류가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씩 불편하고 가난해도 괜찮다는 철학적 존재로 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 행태와 노벨문학상에 대한 비판적 단상도 내놨다.

조정래는 요즘 작가들이 '1인칭 소설'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1인칭 소설을 쓰면 단편은 만들어질지 모르나 장편은 쓸 수 없다.

그렇게 쓴 장편은 불구"라며 "그래서 1인칭 소설을 쓰는 후배들을 격려할 수 없다.

그러면 불구의 작가"라고 일갈했다.

그는 또 노벨문학상을 "가장 정치적인 상"이라고 평가하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작가가 노벨상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탔을 때 일본이 엄청나게 으스댔는데,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와바타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라는 군국주의 작가가 스웨덴에 가서 거대한 파티를 수차례나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파티를 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와바타가 노벨상 수상을 위해 로비를 했다는 뜻이냐'고 묻자 조정래는 "그렇다. 심사위원과 가까이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