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다패 1위'는 낙인 아닌 훈장…"고개 들어요, 장시환"

올 시즌 14패로 핀토와 공동 1위…QS 11차례 등 팀 부진 속 분전
장명부·조계현·이강철·윤석민 등 당대 에이스들도 시즌 최다패 1위 경험
프로야구 투수에게 '패전'은 불명예 기록이다. 경기에서 승리 투수는 다양한 기준과 기록원 판단으로 정해지지만, 패전 투수는 결승타를 허용한 이가 기록한다.

그래서 패전 기록은 팀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라는 낙인처럼 보인다.

패전과 관련된 기록도 주목받지 못한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베어스(현 두산) 박철순이 24승을 기록하며 다승왕에 오른 건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그러나 그해 최다 패를 기록한 투수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삼미 슈퍼스타즈 김재현, 롯데 자이언츠 노상수가 19패씩을 기록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매년 발간하는 레코드 북을 살펴봐도 그렇다.

투수 관련 기록은 100페이지가 넘는데, 투수 패배와 관련된 기록은 딱 한 개다.

진기록인 '최소 투구(1구) 패전' 뿐이다. 야구에서도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분위기다.
최근 들어 패전 기록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한 시즌 최다 패 기록이 그렇다.

한 시즌에 10패 이상 기록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출전 기회가 적은 투수는 많은 패배를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출전을 해야 한다.

많은 경기에 나서기 위해선 체력이 좋아야 하고 큰 부상이 있어서도 안 된다.

또한 결승타를 허용해야 하므로, 해당 경기의 승부처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이로 인해 많은 패배를 기록한 투수는 대체로 실력 있는 이가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패 1위를 기록했던 투수들의 면면은 다승왕 못지않다.

1983년 최다 패는 두산의 레전드 장호연(17패), 최다 패 2위는 고 최동원(16패)이 기록했다.

'너구리' 장명부는 1984년부터 3년 동안 한 시즌 최다 패 1위를 독식(?)했다.

1987년과 1988년은 LG 트윈스의 레전드 정삼흠(당시 MBC 청룡)이 기록했다.
이 밖에 조계현(1990년), 이강철(1994년), 정민태, 구대성(이상 1995년), 한용덕(2000년), 염종석(2003년), 다니엘 리오스(2005, 2006년), 윤석민(2007년) 등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이들이 한 시즌 최다 패 1위 자리를 경험했다.

KBO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도 2009년 (13승) 12패를 기록해 배영수, 봉중근, 심수창과 함께 최다 패 공동 2위 자리에 올랐다.

작년엔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던 브룩스 레일리가 (5승) 14패로 이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레일리는 패배만 많이 기록했을 뿐 평균자책점 3.88을 올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레일리는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해 올해 가을 잔치까지 밟았다.

대체로 최다 패 1위를 기록한 투수는 지독한 불운과 빈약한 팀 전력 때문에 해당 기록을 세운 사례가 많다.

최다 패 1위 기록을 세운 대다수 투수는 평균자책점 등 다른 기록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올해 최다 패 공동 1위를 기록 중인 한화 이글스의 토종 에이스 장시환(33)도 그렇다.

장시환은 올 시즌 26경기에 출전해 4승 14패 평균자책점 5.02를 기록 중이다.

시즌 최다 패배에서는 SK의 외국인 투수 핀토와 공동 1위다.

장시환은 규정 이닝을 채운 토종 투수 중 평균자책점 4위를 달리고 있고, 퀄리티스타트(QS·6이닝 3자책점 이하)는 11차례나 기록했다.

소속 팀이 역대 최다기록 타이인 18연패 수모를 당하는 등 최악의 팀 성적에 거둔 결과라 더 의미 있다. '최다 패 1위' 장시환은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