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쪼개 '3%룰' 이용한 키스톤, KMH와 이사 표대결서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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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톤PE, 표대결서 이사 선임안 부결시켜신라CC 등 골프장과 아시아경제신문 등을 보유한 KMH와 이 회사 2대 주주 키스톤프라이빗에쿼티(PE)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14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KMH가 상정한 이사 선임 안건이 줄줄이 부결됐다. 키스톤은 자신들이 감사를 선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감사 선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키스톤PE는 특수목적법인(SPC) 6곳을 설립, ‘지분 쪼개기’를 통해 회사 측을 공격하고 있다. 현행 상법은 지분이 많아도 감사 선임 때는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키스톤은 펀드를 분산시켰다. 기업들은 앞으로 3%룰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KMH, '3%룰' 적용되는 감사 선임안 자진 철회
경영권 분쟁 본격화될 듯
SPC 6개 설립해 '지분 쪼개기' 등
'3%룰' 등에 업은 사모펀드
상법 개정 땐 대기업까지 공격 가능
KMH 이사 선임 안건 줄줄이 부결
KMH는 이날 서울 외발산동 메이필드호텔에서 임시주총을 열었다. 회사 측은 사내이사 2인, 사외이사 2인, 기타비상무이사 1인, 감사 1인 등 총 6인을 선임하겠다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날 주총 참석자(위임 포함)가 KMH 전체 지분의 89.5%를 보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가 폭등했다. KMH는 상한가(29.85%)를 기록했다.KMH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34.26%다. 2대주주인 키스톤PE는 25.06%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 차이가 있어 이사 선임 안건과 관련해 KMH 측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키스톤PE가 개인 주주들의 위임장을 확보해 상황을 뒤집었다. 이사 선임 등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의 과반이 찬성하고 이들이 보유한 주식이 전체 주식의 25% 이상이어야 한다. 키스톤PE가 자사 지분을 제외하고도 상당수 개인 투자자 지분을 확보해 사내이사, 사외이사,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안건을 부결시켰다.
키스톤PE, 지분 쪼개기로 ‘3%룰’ 활용
감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키스톤PE는 지난달 SPC 6곳을 설립했다. 한 개 법인이 10.06% 지분을, 나머지 5개 법인이 3%씩 지분을 쪼개 보유하도록 했다.지금은 감사를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쳐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반면 2대주주부터는 개별 법인의 의결권을 3%씩 인정해준다. 키스톤PE가 세운 SPC는 개별 기업으로 인정된다. 각각 의결권 3%씩 총 18%로 의결권을 극대화했다. 반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이렇게 할 수 없다. 34.26% 지분을 보유했지만 3%까지밖에 의결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사 선임 안건이 줄줄이 부결되자 KMH 측은 감사 선임 인건을 철회했다.
키스톤PE의 KMH에 대한 경영 참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키스톤PE는 KMH에 “골프장 3개를 매각해 주주 배당에 활용하라”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에게 경영권 위협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프리미엄을 얹어 주식을 매입하도록 하는 ‘그린메일’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게 KMH 주장이다. 현상순 키스톤PE 대표는 “KMH의 무리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면서 키스톤PE에 표를 몰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골프장을 포함해 어떤 자산에 대해서도 먼저 매각을 요구한 적이 없으며, 그린메일을 요구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가치주에 대한 중장기 투자 목적인 만큼 단기 시세차익을 얻고 지분을 매각할 계획도 없다"고 반박했다.
사모펀드 경영권 공격 본격화하나
키스톤PE가 감사 선임을 목적으로 지분을 3%씩 쪼갠 것도 논란이다. 감사는 회사에 영업 보고를 요구하거나 조사할 수 있다. 회사 경영 기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사회와 주주총회 소집 등도 요구할 수 있다.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감사 선임을 위한 3% 지분 쪼개기 관행이 확산되면 사모펀드들이 줄줄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경영권 공격에 나설 것”이라며 “기업의 성장 전략과 관계 없이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큰 기업에 대해서는 자산 매각을 통한 배당 등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3%룰’이 대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도 기업들은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분리선임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현행 상법상 자산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은 이사를 먼저 선출한 뒤 이 중에 감사위원을 선임한다.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하지만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처음부터 이사와 분리해 선임하도록 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모두 합산해 총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일반 주주들은 3%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기업도 KMH와 똑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의미다.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2004년 소버린이 보유 주식 14.99%를 5개 자회사 펀드로 분산한 뒤 SK를 공격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정부 기대와 달리 외국 투기 자본과 헤지펀드들에 경영권 공격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