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추진 공시가격 개선 사업, 국토부 압력으로 좌초"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서울시의 공시지가 현실성 검증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해당 지자체와 감평사들에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정확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토부가 실제로 압박을 가한것으로 확인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 차원에서 처음 시도한 ‘서울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및 균형성 분석을 위한 표본조사 용역’ 사업이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당초 무응찰로 유찰돼 사업계획까지 변경해 추진됐음에도 입찰 참가사가 나서지 않고 있어서다. 김은혜 의원은 “이 과정에서 해당 용역을 무산시키기 위한 국토부의 압박이 있었다”며 “정부가 공시가격 개선보다 권한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7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 및 균형성 분석을 위한 표본조사 계획’을 수립했다. 공시가격이 시장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정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한 서울시가 공시가 현실화 수준과 균형성 실태 검증에 직접 나선 것이다. 것이다. 이는 박원순 전 시장이 올해 초 ‘부동산 가격공시 지원센터’를 만들어 부동산 공시가격이 시세에 근접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

이 용역은 공시가격 결정체계 전반을 들여다보기 위한 지자체 차원의 첫 시도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용역사업이 2차공고까지 무응찰로 유찰됐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8월 당초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초기 구상과는 다르게 조사대상을 개별 토지 및 단독주택에 한정하고 공동주택(2만4786건, 공시대상 부동산 전체의 64.4%)을 제외하는 등 개별부동산으로 사업을 대폭 축소해 재추진했다.
김 의원이 확보한 ‘서울시 부동산 공시가격 표본조사 용역사업 변경 계획’에 따르면, 이같은 사업변경은 지자체의 공시가 표본조사 용역에 대한 국토부의 문제 제기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사업변경계획서에서 조사자인 감정평가사들의 참여 기피(국토부와 마찰 우려)로 사업추진의 어려움이 생겨 사업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경사유를 적시했다. 사업변경으로 공동주택이 조사대상에서 빠지면서 서울시가 전반적인 공시가격 운영체계를 살피기 어려워졌다. 김은혜 의원은 “주택가격 균형성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서울시는 공동주택을 빼가면서까지 국토부와의 마찰을 피하려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 “특히 서울시가 중소법인 감정평가사들의 공동수급계약(컨소시엄)까지 입찰공고문에 허용했음에도 감평법인 및 감평사들의 신청이 국토부와의 마찰 우려로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에서 평상시 국토부의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사업변경 후 추진된 입찰에서도 두 번의 공고 모두 무응찰로 유찰돼 현재 서울시는 수의계약으로 해당 사업을 재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은 “공시가격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공시가 산정과정의 개선사항에 대한 충실한 연구와 공론화 과정이 필수적임에도 국토부는 현행과 같은 ‘깜깜이 공시가격’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토부가 표준지, 주택을 4%(50만필지→52만필지) 늘리는 등 공시가격 개선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제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지자체의 의지마저 꺾어버리고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정부의 깜깜이 공시가격 추진으로 세금이 늘고 지역별 증가폭도 들쭉날쭉 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토부는 제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유형․무형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면서, “지자체 공시가격 정정, 지역 납세자 과세 산정근거 공개 등 공시가격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국회 차원에서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