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난민' 아우성 외면하더니 부총리 구하기엔 전광석화 [사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전세 낀 집을 사고팔 때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여부를 매매 계약서에 명시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내용으로 이달 중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고치기로 했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기 의왕 아파트를 실거주하려는 매수자에게 팔았지만 기존 세입자가 나가겠다는 약속을 번복해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관련 규정을 개정키로 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현재 전세를 살고 있는 서울 마포 아파트의 집주인이 실거주 입주할 예정으로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여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일반 국민이 홍 부총리와 똑같은 문제로 아우성칠 때는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정부가 이제서야 보완대책을 내놓은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전세 낀 집을 팔려고 계약까지 했다가 세입자의 변심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국민은 한둘이 아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7월 말 주택임대차 3법이 전격 시행된 직후부터 속출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의 주요인이 됐고, 관련 민원도 정부에 쇄도했다. 당시 정부는 보완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전세시장이 곧 안정될 것”이란 말만 반복했었다. 그랬다가 이번에 홍 부총리 사례가 부각되자 곧바로 대책을 내놓은 정부에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중요한 건 이번 조치로도 전세 매물의 씨가 말라 세입자들이 제비뽑기까지 해야 하는 문제는 해소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없애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겐 징벌적 세금을 때리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셋값 5% 상한제 등을 도입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애초에 전세 품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가을 이사철임에도 서울의 수천 가구 아파트 단지에 전세물건이 하나도 없는 기현상은 예고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시장심리지수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 대란을 해소하려면 부동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다주택자를 부도덕한 투기꾼으로 몰고 세입자는 과도하게 보호하는 편가르기식 ‘부동산 정치’를 포기하고 수급 조절을 통한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도를 바꿀 때는 여론 수렴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장의 비판 목소리를 저항으로 치부하지 말고,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전세시장은 소소한 땜질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