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프레데리크 쇼팽, 피아노의 시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쇼팽의 작품들은 꽃 속에 묻혀 있는 대포라 하겠다. (중략) 곡마다 쇼팽의 섬섬옥수로 ‘이것은 쇼팽의 곡이다’라고 진주알처럼 써놓은 것이 보이는 듯하다. 그는 이 시대의 누구보다도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시인이요 영혼이다.”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그의 친구이자 근대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프레데리크 쇼팽에 대해 생전 이 같은 평가를 내렸다. 171년 전 오늘, 200여 편의 피아노곡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쇼팽은 슈만의 말처럼 ‘피아노의 시인’으로 기억되며 지금까지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쇼팽은 현재는 폴란드 땅인 바르샤바공국에서 1810년 3월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그는 8세 때 첫 공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 그의 피아노 스승인 보이치에흐 지브니는 1822년 더 이상 쇼팽에게 가르칠 게 없다며 스스로 가르침을 그만뒀다. 당시 쇼팽의 나이는 12세였다.

폴란드와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활동한 쇼팽은 ‘녹턴’ ‘빗방울의 전주곡’ 등의 피아노곡을 남겼다. 다양한 음색을 내기 위한 페달의 사용과 부드러운 연주기법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그는 1849년 10월 1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