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양책 실패, 블랙먼데이 부를 가능성?[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미국 재정 부양책의 미 대선(11월3일) 이전 통과 가능성은 사라져버린 듯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내 반대까지 감수하면서 부양책 액수를 1조8000억 달러 이상으로 높였지만,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2조2000억 달러를 주장하며 'All or nothing'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펠로시 의장은 17일 ABC 인터뷰에서 "난 여전히 희망적"이라면서도 "협상 데드라인은 월요일까지 48시간"이라고 공표했습니다. 이날 저녁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협상한 뒤 이런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월요일 한차례 더 협상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19일 밤이면 협상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릴 수 있습니다. 펠로시의 "희망적"이란 말은 협상 파국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언어일 수 있겠지요.
므누신 장관은 17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이스라엘과 바레인, UAE 방문 중입니다.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자 해외 순방을 떠난 것이죠. 이런데 제대로 협상이 될까요?

여기에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총무는 오는 20일 예정대로 5000억 달러 규모의 공화당 부양책을 상원 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이 지난달 저지했던 안건입니다. 협상 파국을 가정해 공화당 지지자를 위한 정치적 행위에 나서는 것으로 보입니다.기적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고 생각해봅시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16일 "재정 부양책이 지금 합의된다고 해도 사실상 대선 전에 집행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집행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월가 관계자는 "대선이 2주 정도 남은 상황에서 부양책이 통과되면 현재의 대선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민주당이나 공화당 의원들이 이런 위험을 택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한 정치인들은 현상 유지를 하며 선거에 임하는 게 낫다는 현실적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우울한 분위기가 지난 금요일 전해졌지만 뉴욕 증시는 강보합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는 0.39% 상승했고, S&P 500 지수는 0.01% 올랐습니다. 나스닥만 기술주 약세 속에 0.36% 하락했습니다.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됩니다.

첫 번째, 이날 아침 발표된 9월 소매판매가 시장 예상(0.7% 증가)보다 훨씬 높은 1.9% 증가로 나온 겁니다. 소매판매는 다섯 달 째 증가했고 상승폭은 지난 8월의 0.6% 증가보다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이런 소매판매액은 코로나 이전보다도 4.2% 늘어난 겁니다. 품목별로 보면 자동차, 의류 판매가 크게 늘었고 온라인 판매도 좋았습니다.
지난 7월 말로 기존 부양책 집행이 종료됐는데도 오히려 8월보다 소매판매가 더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8월 소매판매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부양책이 지속되지 않으면 소비가 꺾일 것이란 근거로 쓰여 왔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백-투-스쿨(back-to-school) 소비'가 통상적인 8월이 아닌 9월에 나타난 덕분으로 분석합니다.
미국에선 9월 초 신학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8월 각 가정에선 학용품과 옷, 신발, 가방 등을 대거 구매합니다. 월마트 등 유통업체도 대대적 '백-투-스쿨 세일'을 벌일 때이지요. 대부분 학교까지 차를 태워주기 때문에 자동차 소비도 살아납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습니다. 8월 말까지도 각 주 등 지방자치단체는 온라인 수업을 계속할 지, 학교 문을 열어 대면수업을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학부모들이 소비를 늦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8월 말~9월 초 많은 학교가 부분적으로나마 대면수업을 하기로 하면서 9월에 소비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지난 4월~7월 정부의 재정부양책으로 성인 1인당 1200달러, 추가 연방정부 실업급여 주당 600달러 등이 지급됐을 때 저축률은 수십년래 최고치인 33.6%(4월)까지 치솟았었습니다. 통상 미국의 저축률은 5~7% 남짓이었습니다. 지난 8월에도 14% 수준에 달합니다.
코로나 불확실성이 큰 만큼 많은 가계가 소비 대신 저축을 했던 것으로 관측됩니다. 또 많은 지역이 봉쇄된 상태여서 소비하기도 어려웠었죠. 그렇게 저축된 돈이 지금 쓰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어쨌든 9월 소매판매 결과는 당분간 부양책 없이도 미국인들이 견딜 수 있을 것이란 긍정론을 부추겼습니다. 모건스탠리의 엘런 젠트너 수석경제학자가 대표적입니다. 부양책 통과가 불발되어도 경제가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미시간대에서 발표하는 소비자태도지수도 10월 81.2(예비치)로 나와, 전월 확정치(80.4)에 비해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11월3일 대선이 끝나면 민주당이 상원까지 장악하는 ‘블루 웨이브’가 나타나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부양책을 시행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여전합니다.

‘블루 웨이브' 예상은 월가 금융사들의 기본 시나리오로 자리 잡았습니다. 근거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계속 앞서고 있는 여론조사나 후원금 모금 결과뿐이 아닙니다.

지난 16일 열렸던 트럼프와 바이든의 '타운홀' 행사에서 ABC가 중계한 바이든 후보의 토론은 1390만 명이 지켜봤지만, 트럼프 토론을 중계한 NBC를 본 시청자는 1300만 명에 그쳤습니다. 바이든 후보에 관심을 둔 유권자가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트럼프 당선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경합주 위스콘신과 애리조나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 후보가 우세를 지키고 있습니다.
CBS가 18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은 위스콘신에서 51% 대 46%, 애리조나에서 50% 대 47%로 앞섰습니다. 위스콘신과 애리조나의 응답자 각각 53%와 50%가 코로나와 관련해 바이든을 더 신뢰한다고 밝혔으며 34%, 39%만 트럼프를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17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다시 6만9100명을 넘어 사상 최대였던 7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역풍인지, 사전투표에 나선 인파가 역대 수준입니다.

2016년 선거에서는 유권자가 40%가 우편투표를 포함한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AP는 올해 약 50%가 사전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2016년 현 시점에서 700만 명 수준이던 사전투표 인원은 현재 2500만 명을 넘습니다.
이렇게 빨리 사전투표가 이뤄지면 개표 결과도 예상보다 빨리 나올 수 있습니다. 지연되는 개표 속에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뜻입니다.

공화당내 이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양책 증액'을 거부한 미치 매코널 원내 총무뿐 아닙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 벤 새스 상원의원(네브래스카)는 지난 14일 지역구 타운홀 행사에서 트럼프의 코로나 대응 등을 비판하며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 대학살'(republican blood bath)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상하원 의원들까지 줄줄이 동반 낙선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친 트럼프 성향의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최근 에이미 배럿 연방대법관 청문회 도중 민주당의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게 "당신들은 이번에 백악관을 잡을 좋은 기회를 갖고 있지 않냐. 나는 정말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도적 성향을 보여온 공화당 소속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우편투표에서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지지할 수 없어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름을 적었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느낀 탓인지 지난 16일 조지아주 유세에서 "내가 진다는 걸 상상할 수 있겠냐. 그러면 나는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있다"("Could You Imagine If I Lose? I May Have To Leave The Country")고 밝혔습니다. 물론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표를 호소하려는 의도였겠지만요.
최근 미국 주가지수옵션 시장에서 콜옵션 대비 풋옵션의 비율은 0.46으로 다시 지난 8월 초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향후 상승세를 내다보는 콜옵션에 대한 베팅이 주가조정 전인 8월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뜻입니다. 원인 중 하나는 대선 불확실성이 줄어든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1987년 10월 19일은 역사적인 '블랙먼데이'가 발생한 날입니다. 그리고 올해도 오늘 10월 19일은 월요일입니다.
최근 로빈후드 이트레이드 등 미국 주식 브로커리지 회사들은 대선을 앞두고 거래 위탁증거금률을 올리고 있습니다. 25% 수준이던 증거금률을 30~35%로 높여 커질 수 있는 변동성에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선 결과는 여전히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대선 전후까지 예상하지 못한 변동성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10월은 전통적으로 변동성이 가장 컸던 달이라는 걸 기억하십시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