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과거 잣대로 국민연금 압박하는 여당 의원들

석탄기업 투자는 무턱대고 반대
"친환경 변신 회사는 달리봐야"

황정환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jung@hankyung.com
“친환경 에너지 부문으로 발 빠르게 변신 중인 회사가 석탄 사업을 일부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대상에서 무조건 빠져야 한다는 건 억지 아닌가요?”

최근 끝난 국민연금공단 국정감사를 지켜본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지적이다. 올해 국민연금 국감에서 여당 의원들은 석탄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국민연금 이사장을 지낸 김성주 의원을 비롯해 신현영, 김원이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 일제히 국민연금을 압박했다. 이들은 “그린 뉴딜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을 국민연금이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며 “석탄 투자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투자액은 주식 및 채권, 인프라 등을 포함해 약 10조원이다. 구체적으로 한국전력, OCI, GS, 금호석유화학, LG상사 등 국내 기업 5곳에 약 2조3000억원, 넥스트에라에너지 등 해외 기업 174곳에 3조2000억원 등이 들어가 있다. 대부분 해당 기업 주식에 투자한 것이다. 그 외 한전 자회사 등의 채권(3조7000억원),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인프라(4000억원) 등이 의원들의 공격 대상으로 거론됐다. 김용진 국민연금 이사장이 “주식, 채권 투자와 석탄 사업에 직접 투자한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맞섰지만 의원들은 “석탄 투자를 당장 중단하라”고 몰아붙였다.

국감은 끝났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은 의원들이 지적한 사항을 개선할 방안을 찾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투자업계 전문가들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감에서 석탄주로 지목된 상장 기업 상당수는 이미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분야로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요즘 투자 지표의 대세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점수가 높은 기업도 많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의원들이 석탄 관련주라고 딱지를 붙인 5개 종목 가운데 4개는 환경 등급 상위 20%에 들었다. 석탄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친환경 사업이 커지고 있다.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넥스트에라에너지는 발전량 기준으로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이다. 친환경 에너지를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든 수혜주’로 꼽힌다. 도미니언에너지는 워런 버핏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선 ‘버핏주’로 잘 알려져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이미 투자업계는 에너지 기업들이 어떻게 미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며 “석탄이란 글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투자를 막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