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규직화에 멍든 한국 과학기술…연구원 70% "피해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근무하는 연구원 10명 중 7명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자신의 연구 역량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이 출연연 연구원들의 연구 역량을 떨어뜨리고 한국 과학기술계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9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과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으로 25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출연연 연구원 300명을 대상으로 '정규직 일괄 전환 및 전면 블라인드 채용정책 도입 평가'에 관해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2.7%는 현 정부의 정규직 일괄 전환 정책이 연구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26.0%였다. 정규직 전환 추진 3년을 맞아 출연연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해당 정책방향에 대해 직접 설문한 결과다.
해당 기관들은 연구·개발(R&D)을 진행하며 한국 과학기술의 기초를 닦는 기관들이다. 2017년 7명에 출연연 불과했던 이들 기관의 정규직 전환 인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 2512명으로 늘었다. 공공기관 정규직화 정책이 출연연에도 적용된 영향이다. 하지만 막상 이 기관들에 근무하는 연구원 대부분은 자신의 연구 역량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한 것이다.

공동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3%는 연구직 정규직 전환의 부정적 영향으로 '연구역량 저하'를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응답자는 "전환된 정규직 중 상당수가 업무 태만과 능력부족으로 전체 연구 분위기가 저하됐다"고 했다. 일반 지원자와의 형평성 문제(30.3%)를 지적한 연구원들도 많았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과제비 추가지출 및 연구비 비중 감소 부담을 꼽은 응답자(12.7%)도 적지 않았다. 한 익명 응답자는 "정부 일자리 늘리려고 국가 미래를 희생시킨 셈"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직 정규직 전환으로 긍정적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절반(50.3%)가 '긍정적 영향이 없다'고 답했다. 일괄적 정규직 전환에 대한 보완책으로는 57%가 '정규직 전환 시 연구역량 검증 강화'를 꼽았다. 3명 중 1명(33%)는 '개인 성과 평가 강화 및 공정한 보상체계 확립'을 언급했다. 한 익명 응답자는 "공공기관이 갖는 사회적 책임이 공공기관의 주어진 역할보다 우선시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며 "최소한의 역량을 갖춰 역할 수행이 가능한 사람이 채용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전환과 함께 추진된 정부의 전면 블라인드 채용정책에 대해서도 응답자 10명 중 7명(73.7%)은 도입 후 과학기술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응답자(26%)의 세 배 가량이나 됐다. 10명 중 8명(84.7%)은 연구능력 판단을 위한 요소(출신 학교·연구실 정보)까지 비공개하는 현행 블라인드 채용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응답자는 "현재 수행하는 연구에 적합한 사람을 뽑거나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최소한 과학기술계 채용만큼은 블라인드 채용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실에 따르면 25개 출연연의 전체 R&D 예산 중 인건비 비중은 2017년 22.2%에서 29.1%로 늘었다. 같은 기간 실제연구비 비중은 77.8%에서 70.9%로 하락했다. 조 의원은 "획일적인 정규직 전환과 블라인드 채용 정책이 연구역량을 저하시키는 큰 원인이라고 연구자들이 호소하고 있다"며 "제도를 도입한지 3년이 지났고 현장에서도 불만이 넘쳐나는데 관계부처는 모르쇠로만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