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금 일자리'로 잃은 것들

단기 공공일자리 치중한 고용정책
자원배분 왜곡, 지속될 수도 없어
시장 존중하고 노동유연화도 절실

차은영 <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
지난 1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행정통계로 본 9월 노동시장 동향’에 의하면 고용보험 가입자는 1412만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만7000명이 늘어 2.4%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충격이 가장 컸던 지난 5월에 15만5000명 증가로 저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증가해 4개월 만에 2배를 훌쩍 넘겼다. 고용보험 가입자 수의 양적 증가로 보면 고용 상황이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용을 보면 완연한 고용 개선이라고 하기에는 그 방향성과 지속가능성에서 의구심이 든다.

늘어난 고용보험 가입자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60대 이상이 23만2000명, 50대가 12만3000명, 40대가 5만4000명 늘어난 반면, 29세 이하와 30대는 각각 2만2000명, 5만 명 감소했다. 2030세대의 일자리는 되레 줄어 청년층의 고용위기는 심각하지만 60대 이상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 지표상의 증가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업종별로 보면 자동차, 전자통신 등의 제조업은 작년 9월부터 1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고, 전년 동월 대비 5만1000명의 고용이 줄었다. 서비스업에서는 37만4000명의 새로운 고용이 창출됐지만 이 중 48.4%에 해당하는 18만1000명은 대부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일자리사업에서 제공되는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 분야에 국한돼 있다. 국민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조업에서 고용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세금으로 지원하는 공공근로 분야의 고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8월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양질의 고용으로 분류되는 계약기간 1년 이상의 상용직 일자리는 4월 이후 매달 10만 개 이상 감소했고 8월에만 16만3000명의 상용직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같은 시기 임시일용직 근로자는 재정으로 지원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으로 인해 12만6000명 증가했다.

정부의 일자리 예산은 2017년 16조원이었는데 작년 21조원에 이어 올해 26조원까지 늘었다. 내년에는 3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과 대조적으로 15세 이상 인구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17년 60.8%에 비해 작년에도 고작 0.1%포인트 상승한 60.9%에 그쳤다.고용정보원의 ‘2020년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성과평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의 반복 참여율(2년 이상 참여)은 42.6%에 이르고 취약계층과 청년 고용장려금 사업 중 약 30%에서 부정수급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평가됐다. 전체 평가대상사업 중 27.7%가 유사·중복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면밀한 검토 없는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인해 고용정책의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노인일자리가 너무 많다 보니 참여자 수를 맞추기 위해 반복 참여가 일상화됐고 각종 고용장려금 사업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눈먼 돈의 온상이 됐다.

세금으로 만든 임시변통 일자리는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자원배분을 왜곡시킬 뿐 본질적으로 고용시장을 개선시키기 어렵다. 양질의 일자리는 시장이 살아나고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해야 창출된다. 뼈를 깎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고통분담 차원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어떤 일자리도 담보할 수 없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무분별하게 늘리는 것에 재정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재정은 보다 생산적인 교육과 투자에 사용돼야 한다. 취약계층과 청년에게 고용장려금 몇 푼을 쥐여주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나가는 데 필수적인 지식과 기술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을 제공하고, 기업이 하기 어려운 대규모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지속가능한 고용을 확대할 수 있다. 일자리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