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감사 막아라" 문서 444건 삭제한 산업부 공무원들

사진=연합뉴스
"감사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A 산업부 서기관)
"담당 과 컴퓨터, 이메일과 휴대폰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문서를 전부 삭제하세요."(B 산업부 국장)

20일 감사원이 발표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에는 감사원 감사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방해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담당 국장이었던 B국장과 A서기관은 444개에 달하는 파일(122개 폴더)를 삭제했고, 감사원의 디지털 포렌식에도 이 중 120개 파일은 끝내 복구되지 않았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감사 저항이 심한 감사는 재임하는 동안 처음이었다"고 말한 대로다.

담당 국장 "자료 전부 삭제하라"

공무원들의 조직적 저항이 시작된 건 지난해 11월이다. B국장은 당시 A서기관으로부터 월성 1호기 관련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담당 과장 등을 회의실로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B국장은 A서기관에게 컴퓨터와 휴대폰 등 각종 매체에 저장된 모든 관련 문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B국장의 이런 조치에는 산업부 부처 차원의 암묵적인 동조가 있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감사원으로부터 관련 보고자료 및 협의자료 일체를 요구받자 이 중 일부 자료만 제출하고, 청와대에 보고한 문서 등 대부분의 문서를 누락했다.

대대적인 관련 자료 삭제는 12월 1일 일요일 밤에 이뤄졌다. 다음날인 2일 감사원의 추가 자료제출 요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A서기관은 1일 밤 11시 24분 36초부터 다음날 새벽 1시 16분 30초까지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 내 컴퓨터에서 관련 파일 444건을 삭제했다.

'이름 변경 후 삭제' 등 복구 방해 기법 동원

A서기관은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삭제 후 복구가 어렵도록 파일명을 수정해 다시 저장 후 삭제했다"고 진술했다. A서기관은 "다음날인 2일 오전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이 약속돼있는데, 관련 자료가 있냐고 물어볼 것으로 예상했다"며 "감사 관련 자료가 있는데도 없다고 말하기 꺼려졌고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을 마음도 있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끝까지 실행되지는 못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다. A서기관은 "처음엔 파일명과 파일 내용을 모두 수정해 삭제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중간부터는 그냥 폴더째로 삭제했다"고 했다.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 새벽 사이 자료를 삭제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직원이 당시 업무에 사용했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평일 낮에는 다른 직원이 컴퓨터를 사용 중이고, 평일 밤에는 야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부담이 됐다"며 "11월부터 계속 자료를 삭제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나 이를 실행하지 못하다가 감사관 면담을 앞두고 급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갔다"고 했다.

444건 중 324건만 복구

감사원은 이렇게 삭제된 파일 444건 중 324개만 복구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120개는 A서기관 조치 등의 영향으로 복구에 실패했다. 산업부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등은 한수원이 추진하는 사안이라 주로 구두로 보고가 이뤄졌으며, 최대한 성실히 요청 자료를 제공하려 했으나 요구사항에 다소 미치지 못했던 점이 있다면 양해해 달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산업부에 A서기관과 B국장에 대한 경징계 이상의 징계처분을 요청키로 했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경징계에는 감봉이나 견책 등이 해당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