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꺼지지 않는 등불 되고파"…전북경찰 112 상황실 '걸캅스'

하루 평균 2천여건 신고 접수…경찰관 1명 100~150건 전화민원 처리
주취자 폭언·불규칙한 식사 등 고충…"마음 속으로 격려해줬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도움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리를 떠날 수 없죠."
제75주년 경찰의 날인 21일 전북지방경찰청에서 만난 112 상황실 최자옥(44) 경감과 허근숙(36) 경사는 침착했다. 112 상황실은 경찰과 신고자가 처음 마주하는 곳이다.

위급한 순간에 놓인 신고자가 전화하면 사건별로 상황을 분류해 지구대와 파출소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하루 평균 2천건. 낮과 밤을 나눠 일하는 전북 지역 경찰관 한 명이 매일 100∼150건의 신고를 처리한다. 밤에는 업무 강도가 더 높다.

시비와 폭행 신고가 몰리는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는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빗발치는 전화 속에서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와 사건 내용은 알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수화기 너머의 불안도 다독이는 게 이들의 임무다. 최 경감과 허 경사는 비번에도 "일선 현장에서 늘 고생하는 경찰관을 알리고 싶다"며 흔쾌히 이날 인터뷰에 응했다.

112 상황실에서 일하는 경찰관이 가장 많이 겪는 고충은 주취자의 폭언이다.

구체적 상황 설명 없이 술에 취해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허 경사는 "얼마 전에 '사람을 죽였다'는 신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서 바로 '코드0'(강력범죄 현행범을 잡아야 할 때 내리는 대응)를 발령하고 위치를 물었는데 답을 하지 않고 계속 욕을 했다"며 "나중에 다 세 보니까 18번이나 입에 못 담을 욕을 했더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 경감은 "상황실 전화가 울려서 받으면 '빨리 여기로 오라'며 무작정 고함만 지르고 끊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며 "휴대전화 기지국을 통해서 대략적인 장소는 파악할 수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아서 이럴 경우엔 출동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밤새 한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전화만 받는 것도 고역이다.

허 경사는 "상황실에 처음 들어온 신입이 가장 낯설게 느끼는 점은 선배들이 전화기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볼 때"라며 "갑자기 신고가 밀려서 자리를 비울 수 없는데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이렇게라도 때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워킹맘인 최 경감과 허 경사는 자녀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낮과 밤을 번갈아 일하는 상황실 근무 특성상 정작 필요할 때 아이들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다.

최 경감은 "얼마 전에 딸이 밤늦게 공부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나서 확인해보니까 과열된 전기매트가 타고 있었다"며 "항상 화재 신고를 접수하는데 정작 우리 아이가 그런 상황을 겪고 있을 때 밖에 있느라 도와주지 못해서 엄마로서 미안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감정을 소모하는 고된 자리에서 최 경감과 허 경사가 일하는 이유는 '밤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누군가 도움을 절실히 원할 때 환한 불을 비추는 경찰이 되는 게 이들의 목표다. 허 경사는 "상황실뿐만 아니라 신고를 받고 24시간 현장으로 출동하는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관도 말 못 할 고충이 있지만, 국민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며 "하나 바라는 점은 고생하는 경찰에게 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속으로 격려 정도는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