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주71시간 살인적 노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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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선언
"재벌택배사 놀부짓·정부 무능 근절해야" 비판
택배 분류작업 인력 추가·정부 대책 강화 요구도
"주 평균 71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입니다. 사회적 감시를 통해 택배사들과 정부의 무능, 나태 등의 악순환을 함께 끊어내야 합니다."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는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지적하며 정부와 택배회사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계, 종교계 등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대책위는 이날 '택배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한 각계 대표단 공동선언 발표 기자회견'에서 택배사 횡포와 정부의 안일한 태도 등이 맞물린 사회 구조적 악순환이 택배기사들을 지속적으로 사망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대책위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며 "그 핵심적 요인은 재벌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분류작업에 있다"고 했다.
박석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이 문명사회에서 이게(택배기사들을 위한 대책 마련)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사회적 감시를 극대화해 재벌 택배사들의 놀부짓, 정부의 무능과 나태 등의 악순환을 함께 끊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정부가 각종 약속만 늘어놓을 뿐 실질적으로 택배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대책 마련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당장 실현할 수 있다"면서 "분류 인력을 별도로 투입하면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심각한 일자리 문제도 덤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로사라는 죽음의 사슬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며 "이대로 계속 가면 언제 어디서 또 누군가가 과로사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류 작업이란 택배 배송 업무 전, 택배 노동자들이 물량을 동별로 나누고 세분화하는 작업으로 택배기사들 사이에서 과로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밖에 김중배 전 MBC 사장과 임상혁 녹색병원장, 김재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비대위원장 등도 잇따라 발언을 통해 택배사들을 규탄하며 "정부는 선심성 공약 아닌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심야배송을 자제하도록 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정부 차원 대응은 '보여주기식 쇼'에 불과했을 뿐,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노동계, 종교계 등 각계 대표들이 연달아 발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수많은 물량을 운반하는 택배노동자들이 스스로를 갈아서 지금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고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이 죽음에 대해서 더는 정부와 택배회사가 이를 무시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사회각계 대표자 긴급 공동선언문 전문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벌써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방역 성공신화에 빛나는 2020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매우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택배노동자들은 주 평균 71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데 그 핵심적 요인은 재벌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분류작업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노동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데 그 핵심적인 요인은 재벌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분류작업에 있습니다. 이로 인해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노동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분류작업에 할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택배노동자들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추석 이전부터 과로사의 근본 원인인 장시간 노동을 단축시키는 방안으로 분류작업 별도인력 투입을 요구하였습니다. 재벌택배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바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입니다. 현 시기 일자리 부족 상황을 극복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되는 방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벌택배사들은 분류작업에 추가인력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눈가림 이행에 그쳤을 뿐이고 실제로는 거짓, 꼼수로 일관하며 택배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가로사에 내몰리는 구조적 상황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문제해결을 사실상 외면했습니다. 재벌택배사들은 추석 전 2067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정부를 통해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400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의 추가인력만을 투입하였습니다. 그 마저도 노동조합이 있는 터미널에만 투입하였습니다. 10월에 과로사로 돌아가신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택배노동자분들의 작업현장에 분류작업 추가인력 투입이 없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재벌택배사는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과로사에 충격을 받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국민들과 정부를 기만했습니다. 또한 단 한 번의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하지 않았고, 또 유족에 대한 응당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CJ대한통운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대필하여 제출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진택배는 고인의 평상시 업무량이 타 택배기사보다 적었으며, 또 지병으로 사망한 것이어서 과로사가 아니라는 등 고인의 사망원인을 은폐하고 왜곡하였습니다. 천인공노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부당국도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노동부장관은 지난 8월 재벌택배사들과 함께 ‘택배종사자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공동선언의 내용에는 심야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지난 9월17일 노동부가 국토부와 함께 발표한 추석기간 택배종사자 보호조치 보도자료에도 버젓이 공동선언을 첨부하여 심야배송이 안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매일매일 점검하고 노동부는 현장지도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나 이는 보여주기식 쑈에 불과하였을 뿐 실제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10월12일에 돌아가신 한진택배 故 김모 택배노동자의 경우 계속적인 삼야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인이 남긴 카톡메시지에서 새벽 4시30분, 새벽 2시 등 새벽 시간에 업무가 종료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정부당국이 그리고 재벌택배사들이 국민들과 택배노동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심야배송이 중단됐더라면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금 당장 분류노동에 별도인력을 투입하고 노동시간을 적정 수준으로 단축하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택배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처해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또 누가 과로사 할 지 알 수 없는 매우 위태위태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한시도 늦출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특단의 대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 일하다 과로사 하는 택배노동자들이 발생하는 구조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재벌택배사들의 입에 발린 거짓 약속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당국이 이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해 책임 있게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또한 코로나 시대 전 국민이 택배 이용자가 됐습니다. 이제 국민들이 이용자로서 실질적 당사자이기도 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두 함께 나서 사회적 감시를 조직하고 과로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합시다. 그래서 기필코 이 참혹한 죽음의 사슬을 끊어냅시다.
이에 사회 각계 대표자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합니다.
하나. 재벌택배사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해 분류인력 별도투입과 노동시간 단축조치를 즉각 시행하라!하나. 정부는 실효성 있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즉각 시행하라!
하나. 택배이용자들이 함께 나서 사회적 감시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추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