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제출 신도명단에 주민번호 포함 요구…역학조사 적법했나

이만희 총회장 재판에 당시 중수본 특별관리전담반장 출석
"출입국·의료기록 등 확인에 필수"…"자료제출 요구일 뿐 역학조사 해당 안 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역학조사 과정에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신도 명단을 요구한 것이 적법했는지를 두고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수원지법 형사11부(김미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천지 이만희(89) 총회장 4차 공판에 출석한 보건복지부 국장급 공무원 A씨는 지난 2월 말 신도 명단을 제출받으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 배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A씨는 당시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특별관리전담반장을 맡아 신천지 측으로부터 신도 명단, 시설 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받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 이후 하루 평균 확진자는 1명 내외였으나,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2월 18일 이후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폭발적이었던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의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출입국 기록·의료 기록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역학조사에 필요했다"며 "당시 신천지 12개 지파 중 대구 포함 11개 지파 소속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와 전국 확산이 우려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총회장의 변호인은 방역당국이 신천지 측에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신도 명단을 내달라고 요청한 것은 단순히 자료 제출 요구 절차일 뿐, 역학조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변론했다. 결국 이 총회장이 신도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방역당국에 내주지 않은 사실을 두고 검찰이 적용한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변호인은 "역학조사라고 하면 확진자 혹은 의심자 발생 시 당사자에 대한 동선 및 접촉자 파악 등을 말하는 것"이라며 "신도 명단 등의 자료 제출 요구는 감염병예방법이 규정한 역학조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A씨에게 "증인과 이 문제를 논의한 신천지 간부는 '신도들로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것이 불법인데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줄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검토한 바 있느냐"면서 개인정보 보호법과의 상충 우려를 지적했다.

A씨는 "검토한 바 없다"고 답했다.

A씨는 지난 재판 불출석으로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받았으나, 이날 출석으로 부과 결정이 취소됐다.

휠체어를 타고 나와 피고인석에 자리한 이 총회장은 6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 재판은 오는 26일 열린다.
이 총회장은 신천지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2월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 방역 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해 보고한 혐의(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구속기소 됐다.

그는 신도 10만여 명의 주민등록번호 정보를 제출 거부하는 등 자료를 누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50억여원의 교회 자금을 가져다 쓰는 등 56억원을 횡령(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하고,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승인 없이 해당 지자체의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업무방해)도 받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