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의 고성과 윤석열의 '낮은 호통'이 남긴 것들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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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나비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추 장관은 최근 두어달새 국회 대정부 질문 등에서 남다른 매너와 특유의 동문서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민 대표'의 질의라는 형식을 존중해 몸을 낮추는 관행을 무시하고 의원들의 추궁에 고개를 빳빳이 하고 소위 '맞짱'을 떳다. “그래서 어쨋다는 겁니까” ”소설쓰시네”라며 받아친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거친 매너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추장관이 부러웠던 것일까. 이제 대한민국 국회의 발언대에 선 이들은 너나없이 호통과 조롱과 동문서답을 탑재한 모습이다. 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불러놓고 벌어진 국정감사장 공방은 추 장관의 맹활약 이후 달라진 국회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거대 여당의원들은 눈엣가시 같은 윤 총장에 '호통 폭탄'을 퍼부었다. 박범계 의원이 선봉에 섰다. 사법연수원 동기지만 나이가 어려 윤 총장을 '형'이라 부른다는 박 의원은 거침없는 답변에 당황하다 "똑바로 앉으라"고 소리치며 꼰대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두어해전 박근혜 정부에 맞선 윤 총장의 소신을 칭찬하며 절대 사퇴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범계 아우가 드리는 호소'라는 페북 격려문까지 낸 박의원의 놀라온 표변이다. 막 태동하는 호통시장에서 박의원의 활약은 발군이다. 며칠전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과 토론할 때는 방송에서 들을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최고 데시벨의 고성을 폭발시켰다. 말리며 중재에 나선 프로그램 진행자에게까지 '내말 끝까지 들어라'는 식으로 호통을 퍼부었다.
"내가 조국이냐,조국이야"는 샤우팅으로 유명세를 얻은 김종민 의원도 호통계의 신성이다. 김의원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냐 아니냐"는 일차원적 질문과 호통으로 일관했다. 송갑석 의원 역시 고성과 삿대질로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의 호통은 윤총장의 현란에 회피술에 밀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윤 총장은 "조국 딸 상장 쪼가리는 탈탈 털더니…" 라는 여당의원 저급한 공격에 "장난합니까"라는 막말로 한술 더떴다. '선택적 정의에 빠졌다'는 지적에는 '의원님의 선택적 의심을 돌아보라'고 맞받았다. 답변태도 꼬투리 역시 "허,참~"이라는 한마디 탄식으로 흘려보내는 내공을 발휘했다. 여당의원들의 하이데시벨 호통을 윤 총장의 조근조근 '낮은 호통'이 압도했다는 평가다. 그리하며 '윤총장이 의원들의 영혼을 탈곡했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국정감사를 보는 내내 씁쓸하을 느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당의원들의 수준 낮은 공세에 대응하는 차원이었지만 일국의 법치를 관장하는 장수가 내뱉은 진중하지 못한 발언들은 법치에 대한 냉소와 경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윤 총장이 의도한 싸움인지 말려든 싸움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한수 접고 듣는 게 상책인 의원들의 막말경연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검찰수장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힘들게 쌓아온 신뢰에 흠집을 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통은 대화의 불능을 의미한다. TV 카메라로 생중계된 국회의 거친 설전은 대화가 단절되고 비상식과 악다구니만 넘치는 한국의 현주소다. 넘치는 조롱은 선진사회의 필수재인 품격이라는 미덕이 실종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논쟁하고 설득으로 해법을 찾기보다 저급한 언동으로 자신의 화를 푸는 데 치중하는 선량과 공복의 모습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펼쳐진 스산한 풍경들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거친 매너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 추장관이 부러웠던 것일까. 이제 대한민국 국회의 발언대에 선 이들은 너나없이 호통과 조롱과 동문서답을 탑재한 모습이다. 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불러놓고 벌어진 국정감사장 공방은 추 장관의 맹활약 이후 달라진 국회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거대 여당의원들은 눈엣가시 같은 윤 총장에 '호통 폭탄'을 퍼부었다. 박범계 의원이 선봉에 섰다. 사법연수원 동기지만 나이가 어려 윤 총장을 '형'이라 부른다는 박 의원은 거침없는 답변에 당황하다 "똑바로 앉으라"고 소리치며 꼰대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두어해전 박근혜 정부에 맞선 윤 총장의 소신을 칭찬하며 절대 사퇴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범계 아우가 드리는 호소'라는 페북 격려문까지 낸 박의원의 놀라온 표변이다. 막 태동하는 호통시장에서 박의원의 활약은 발군이다. 며칠전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과 토론할 때는 방송에서 들을 것이라는 상상도 못했던 최고 데시벨의 고성을 폭발시켰다. 말리며 중재에 나선 프로그램 진행자에게까지 '내말 끝까지 들어라'는 식으로 호통을 퍼부었다.
"내가 조국이냐,조국이야"는 샤우팅으로 유명세를 얻은 김종민 의원도 호통계의 신성이다. 김의원은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냐 아니냐"는 일차원적 질문과 호통으로 일관했다. 송갑석 의원 역시 고성과 삿대질로 국정감사장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의 호통은 윤총장의 현란에 회피술에 밀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는 게 중론이다. 윤 총장은 "조국 딸 상장 쪼가리는 탈탈 털더니…" 라는 여당의원 저급한 공격에 "장난합니까"라는 막말로 한술 더떴다. '선택적 정의에 빠졌다'는 지적에는 '의원님의 선택적 의심을 돌아보라'고 맞받았다. 답변태도 꼬투리 역시 "허,참~"이라는 한마디 탄식으로 흘려보내는 내공을 발휘했다. 여당의원들의 하이데시벨 호통을 윤 총장의 조근조근 '낮은 호통'이 압도했다는 평가다. 그리하며 '윤총장이 의원들의 영혼을 탈곡했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국정감사를 보는 내내 씁쓸하을 느낀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여당의원들의 수준 낮은 공세에 대응하는 차원이었지만 일국의 법치를 관장하는 장수가 내뱉은 진중하지 못한 발언들은 법치에 대한 냉소와 경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윤 총장이 의도한 싸움인지 말려든 싸움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한수 접고 듣는 게 상책인 의원들의 막말경연의 한복판으로 뛰어든 검찰수장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힘들게 쌓아온 신뢰에 흠집을 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호통은 대화의 불능을 의미한다. TV 카메라로 생중계된 국회의 거친 설전은 대화가 단절되고 비상식과 악다구니만 넘치는 한국의 현주소다. 넘치는 조롱은 선진사회의 필수재인 품격이라는 미덕이 실종되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논쟁하고 설득으로 해법을 찾기보다 저급한 언동으로 자신의 화를 푸는 데 치중하는 선량과 공복의 모습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문재인 정부 3년 만에 펼쳐진 스산한 풍경들이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