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적던 이건희…그의 인생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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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삶과 인생

고독을 견디며 집중력 쌓아
이 회장은 어린 시절 대부분 혼자 지냈다. 여섯 살이 돼서야 온 가족이 서울 혜화동에 모여 살게 됐다. 1947년 5월 이 창업주가 사업을 확장하며 대구에서 서울로 옮겼고, 이 회장은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950년 6·25전쟁이 터지면서 마산, 대구, 부산 등으로 피란을 다녔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다섯 번이나 초등학교를 옮겨다녔다. 가족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이 회장은 소꿉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이 회장은 1989년 월간조선 12월호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친구도 없고, 놀아줄 상대가 없으니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 생각을 아주 깊이 하게 됐다. 가장 민감한 나이에 민족 차별, 분노,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걸 절실히 느꼈다.” 이렇듯 이 회장은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무언가에 꽂히면 며칠씩 밤을 새우면서 파고드는 날이 많았다. 라디오 등을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는 취미도 생겼다. 대학 때 다시 일본으로 가 와세다대에 다닐 땐 당시 세계 최고로 발돋움하던 일본의 텔레비전, VTR, 카메라,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했다.
45세에 삼성 회장으로 취임
이 창업주는 1977년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남은 성격으로 봐 기업에 맞지 않아 손을 떼게 했다. 차남은 중소기업 정도의 사고방식밖에 없기 때문에 삼성을 맡길 수 없다. 따라서 아들 셋 가운데 막내아들로 후계자를 결정했다”고 털어놨다.
이 회장은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후계자로 낙점된 뒤에도 이 회장은 늘 말을 아꼈다. 그저 이 창업주 뒤를 묵묵히 따라다녔다. 여러 기록과 사진에도 이 회장은 이 창업주 뒤에 말없이 서 있다.그러나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만큼은 단독 행동에 나섰다.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 회장은 오일쇼크 와중에도 사재를 털어 파산 직전이던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50만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에선 사업성이 없다고 봤지만, 이 회장은 미래가 반도체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
신경영 선언 후 10년도 안돼 건강 악화
1987년 이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뒤 이 회장은 45세의 나이에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취임 당시부터 ‘초일류 기업’을 목표로 내걸었다. 끊임없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이건희식 경영철학’을 강조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때는 열두 시간을 쉬지 않고 강연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등으로 유명한 신경영으로 삼성은 천지개벽을 했다.그로부터 6년 뒤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1999년 말~2000년 초 폐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완치는 됐지만 이후 활동은 크게 제약을 받았다. 이 회장은 매년 겨울이면 기후가 따뜻한 일본이나 하와이 등에서 지내며 건강 관리를 해왔다.2014년 5월에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졌다.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응급 처치로 심장기능 상태를 회복한 이 회장은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심장혈관 확장술을 받았다. 이후 장기 입원치료를 받다가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타계했다.
정지은/김현석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