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근·이찬 서울대 父子 교수 "직업교육은 삶의 문제…대학 체질도 확 바꿔야"

'代 이은 직업교육 74년'

'한국의 직업교육 훈련 정책' 출간
1945년부터 직업교육 75년 집대성
이 명예교수, 직업교육 기초 쌓고
이 교수는 직업교육 뼈대 갖춰

"백화점식 대학교육 경쟁력 없어
연구·교육중심 대학으로 개선해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현직 부자(父子) 교수가 560쪽 분량의 직업교육 교재 《한국의 직업교육훈련정책》을 최근 출간했다. 이무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농산업교육과 명예교수(왼쪽)와 같은 대학 이찬 식물생산과학부(산업인력개발학 전공) 교수(오른쪽)가 그 주인공이다.

부자의 직업교육 연구기간을 합하면 74년이나 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대 원장을 지낸 아버지 이 명예교수는 한국 직업교육의 기초를 닦았고, 아들 이 교수는 한국 기업교육의 뼈대를 세운 전문가다. “어떻게 아버지가 연구한 학문을 이을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이 교수는 “아버지는 나의 롤모델이었다”며 “학창시절 한 번도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이 없었지만 대학 전공과 직업 선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분”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인력개발학이 농업생명과학대에 있는 이유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인류역사의 첫 직업은 농업이었다”며 “농업교육에서 직업교육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놨다.충북 영동 태생인 이 명예교수는 서울대 농생물학과 출신이다. 교육대학원 진학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이 명예교수는 “농촌 발전을 위해 농업고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 교육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문교부(현 교육부)의 직업교육 양성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미국에서 직업교육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수하고, 일리노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다. 이 명예교수는 미국에서 이수한 농업·공업·상업·가정·보건교육 등 5개 분야 직업교육의 씨앗을 한국에 심었다. 서울대 대학원에 진로교육, 기업HRD(인력개발) 등을 개설해 후진을 양성하는 데 매진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학장을 지낸 정철영 교수, 교육부 차관을 거친 나승일 교수 등이 그의 제자다.

책은 한국의 직업교육 75년사를 집대성했다. 이 명예교수는 5년간 매일같이 국회 도서관을 찾아 자료를 모았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됐는데 중등·고등직업교육의 역사는 이 명예교수가, 기업 직업교육과 미래 직업훈련의 방향은 이 교수가 주도해 집필했다.이 명예교수는 역대 대통령 중 직업교육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6·25전쟁 후 나라 재건의 바탕이 인재 양성이라고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공업고 시설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 시절부터 고급인력 양성정책으로 직업교육의 축이 전환되면서 중등직업교육은 차츰 쇠퇴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등 사회적 변화로 기업들이 채용을 줄이면서 4년제 대학 이수자들은 눈높이를 점점 낮추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현재의 종합백화점식 대학 교육으로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며 “미국처럼 연구·교육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직업교육 정책서이지만 사회진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직업 철학서'이기도 하다. 이찬교수는 "평균수명이 100세로 늘어나는 긴 여정에 '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없이는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자신 있는 태도를 취할 수 없다"며 "살면서 직업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일과 삶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참고 자료를 곳곳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 책의 1차 독자는 학생이지만, 정부의 직업교육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가들도 독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명예교수는 "교육개혁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연속선상에서 계획되고 실천돼야 하는 100년 과업"이라며 "정부 정책이 잘못되면 후세에 미치는 여파가 크기에 직업교육 정책을 세우는 공무원들이 참고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부자는 이 책 출간에 앞서 청소년들의 진로를 돕기 위해 '꿈꾸는 진로여행'을 함께 내놓기도 했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