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융사 대표 "어느 날 내가 사기꾼이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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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사기' 당해 문닫는 금융사“당신네로부터 1600만원의 투자사기를 당했어요. ”
수십명의 명의 도용·홈페이지 제작할 정도로 치밀
범인 검거는 쉽지 않아
개인 간(P2P) 대출 업체 A사의 안모 대표(50)는 지난 7월 23일 회사 직원으로부터 황당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대표님이 사기꾼이 돼있고 우리가 사기회사로 알려져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이었다.직원이 보낸 링크를 들어가보니 A사를 사칭한 홈페이지와 네이버 카페가 지난 6월부터 개설돼 있었다. 안 대표는 바로 자사 홈페이지에 관련 공지를 띄우고 서울 종로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후 두 달여간 30여명의 피해자들로부터 A사를 사칭한 곳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피해자 모임은 경찰에 붙잡힌 계좌 소유자를 피고소인으로 지목해 지난 23일 경기 수원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계좌 소유자가 주범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신뢰 쌓고 입금유도 후 잠적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리딩(leading)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리딩 사기란 주식, 펀드 등에 대리 투자를 해준다고 속여 돈을 받은 뒤 잠적하는 것을 말한다.사기범들은 자신을 투자전문가라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뒤 카카오톡 등으로 1:1 상담을 유도한다. 주식, 외환파생상품, 펀드, 금 등에 투자를 권유하고 피해자들이 송금하면 조작된 결과를 보여준다. 홈페이지에는 수익을 봤다는 가짜 후기들도 올린다.
피해자가 출금을 요청하면 갖은 명목으로 2·3차 입금을 유도하고 최종적으로는 투자금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통보한뒤 잠적한다. A사 사칭 사기범으로부터 3억원의 피해를 본 한모씨(63)는 “말하는 걸 들어보면 금융 쪽에 박식한 편이어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더라”고 했다. 지난 6월에는 리딩 사기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에는 대표, 전문가, 직원 등 수십명의 명의를 도용하고 홈페이지까지 제작할 정도로 수법이 치밀해졌다. A사 사칭 사기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오킴스의 이채승 변호사는 “A사 사칭 사기범은 실존 업체의 대표자명을 도용하고 사업자등록증, 전문투자확인증, 도메인 등을 정밀하게 위조해 일반인들이 사기인지 쉽사리 알아채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난해 4월 설립한 회사였는데 (사기피해로) 1년 만에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며 “금융사가 사기에 연루된 것으로 오인 받는데 계속 영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금전적 손실만 8억원 가까이 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는 등 무형적 피해는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A사 외에도 S사, M사 등 금융회사 소속 전문가들의 프로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 검거는 쉽지 않아
범인 검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온라인에서 사기행각이 벌어지는데다 사기꾼들이 대포폰, 대포통장으로 신분을 숨겨 수사망을 피하기 때문이다.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A사 사칭 사건은 아직 피의자 특정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포털사이트에서 수사협조문을 보내면 회신이 오는 데만 한 달 넘게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는 동안 사기꾼들은 기존 홈페이지와 카페를 없앤 뒤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설명했다.리딩 사기의 경우 사기에 사용된 계좌의 인출을 막는 ‘계좌 지급정지’도 어렵다. 지급정지는 보이스피싱 등 기존 금융사기에만 국한돼 있어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비대면 생활이 익숙해지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온라인 사기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며 “사기를 근절시키겠다는 의지를 정부 차원에서 가져야 하고 포털사이트도 수사기관에 빠르게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